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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기행 ②] 천지(天池)의 물은 샘물처럼 맑았다.

  • 장윤정 특파원 weeklykoreanz@newskorea.ne.kr
  • 입력 2021.06.24 16:08
  • 수정 2023.01.2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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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뉴스코리아) 장윤정 특파원 = (편집자주: 뉴질랜드 교민 제임스 안(네이쳐코리아 대표)은 2019년 9월 10일~17일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다녀왔다. 안 대표는 뉴질랜드 국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신분이기에  한국에서 사진작가 겸 트레킹 전문가로 활동하는 로저 셰퍼드 등 7명과 함께 했다. 이 기행문은 2주마다 총 8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
 

백두산 천지에 앉아있는 북한 직원(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백두산 천지에 앉아있는 북한 직원(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 하늘에 있는 거룩한 못
천지(天池)였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있는 거룩한 못이라고 여겼던 바로 그 천지였다. 바람과 빛은 천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신비로움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졌다. 20여km의 둘레에 지름이 4km 남짓, 여의도만하다고 하던가. 짙푸른 물빛에서는 영험한 기운이 뿜어지는 것 같았고, 잔잔한 수면 위로 그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천지는 내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캐묻지 않았고, 왜 이제야 왔느냐고 나무라지 않았다. 병풍을 두른 듯한 날카로운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천지는 무거운 침묵으로 나를 맞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두 번 천지를 보러 갔었다. 중국을 통해서였고, 장백산 전망대에서였다. 두 번 모두 정상 주변에 짙은 구름이 끼어 있어서 천지를 보지 못했다. 구름 속에서 구름 속 저편을 더듬거렸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천지를 보려면 삼대에 걸쳐서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한반도의 자손인 내가 중국 땅인 장백산에서 천지를 보려 했던 잘못이었다. 그 무례함이 죄송스러웠다.

천지는 백두산의 천지이어야 했다. 백두산의 진정한 정상은 해발 2,750m의 장군봉(將軍峰)이었다.

하늘을 향해서 우뚝 솟아 천지를 내려다보며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장군봉의 좌우에는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해발봉(海拔峰)과 하늘을 집어삼킬 듯 울부짖는 망천후(望天吼)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장군봉에 올라서자 백두고원(白頭高原)의 모든 산봉우리가 눈 아래에 있었고, 광활한 용암대지, 그리고 끝없는 원시림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양팔을 크게 벌리고 가슴을 크게 부풀려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 백두산 정상에 다다른 것이었다. 일찍이 나라의 조종산(祖宗山)으로 일컬어져 왔으며, 또한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한민족에게 통일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백두산의 정상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한반도기(統一旗)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사방을 향해 힘차게 흔들었다. 비로소 한반도의 자식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오른 물
장군봉 아래에서 천지까지는 풀 한 포기 없는 회색 현무암 지역이었고, 40도 가까운 경사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평양 개성간 고속도로가 일직선이듯이 계단 역시 일직선이었고, 그래서 굉장히 가팔랐다.

우리 일행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리막이어서 수월할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걸을만 했는데, 어느새 무릎이 후들거리고 발목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천지까지는 200m 정도가 남아 있었다. 자잘한 야생초와 모래사장으로 이어졌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을 담근 채 찍은 사진(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백두산 천지에서 발을 담근 채 찍은 사진(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다들 걸음이 빨라졌고, 배낭을 벗어 던졌고, 물가에 엎드려 손을 담갔고, 두 손을 모아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셨다.

천지의 물은 샘물처럼 맑았고, 시릴 만큼 시원했고, 약수인 듯 달콤했다. 과연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오른, 천지의 물이었다. 나는 물가에 털썩 주저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용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물이 발목을 지나 정강이를 적셨다. 물의 기운이 살갗을 지나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따갑고 찌릿하고 차가웠다.

얼마나 오고 싶었던 천지였으며 보고 싶었던 천지였던가. 살아생전에 못 볼 줄 알았고, 그럴 줄 알고 살아왔다. 나는 천지를 보았고, 천지의 물을 마셨고, 천지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다시 한 번 한반도의 자식임을 확인했다.

우리 일행은 풀밭에 모여 앉았다. 베개봉 호텔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을 쌀 한 톨, 반찬 한 토막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북한 호텔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을 먹는 일행(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북한 호텔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을 먹는 일행(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먼저 출발했지만 도로를 따라 올라오느라고 늦게 도착한 북한 사람들과 대학생들이 우리가 했던 것처럼 물에 손을 담갔고, 물을 한 모금 떠먹었고, 발을 담근 채 활짝 웃으며 사진들을 찍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풀밭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봉우리에 갇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과 천지 사이는 거칠 것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회색의 거대한 절벽과 날카로운 능선으로 둘러싸인 신의 영역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나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형체가 없어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드높은 기상과 위대한 업적들이 응집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더 표현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흐르고 있는 힘이 나는 자랑스러웠다.

바람도 구름도 없는 최고의 날씨였다. 날씨조차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제야 옆을 돌아볼 마음이 들었다.

오른쪽에는 케이블카 관리소가 있었고, 왼쪽에는 지진관측소가 있었다. 남북의 두 지도자가 타고 오르내렸던 케이블카였고, 한시도 쉬지 않는다는 시설이었다.

백두산은 우리가 모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통일의 상징이었고, 잠시 사색에 빠진 살아있는 휴화산(休火山)이었다.

관심이 크면 클수록 백두산은 우리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이었다. 아무리 뜻 깊은 곳이지만 눌러앉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계단을 기어올랐다. 다시 오른 정상에서 나는 천지를 가슴 깊이 담았고, 두 눈 가득 채웠다. 천지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이 내게는 새삼스러웠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 삶에 새로운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외국인의 신분으로 오른 백두산이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였고, 선택받은 한국인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제임스 안(뉴질랜드 네이쳐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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