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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기행 ③] 백두산 해돋이는 내 해돋이, 한반도기 펼쳐들었다 1

  • 장윤정 특파원 weeklykoreanz@newskorea.ne.kr
  • 입력 2021.07.08 16:39
  • 수정 2023.01.2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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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뉴스코리아) 장윤정 특파원 = (편집자주: 뉴질랜드 교민 제임스 안(네이쳐코리아 대표)은 2019년 9월 10일~17일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다녀왔다. 안 대표는 뉴질랜드 국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신분이기에  한국에서 사진작가 겸 트레킹 전문가로 활동하는 로저 셰퍼드 등 7명과 함께 했다. 이 기행문은 2주마다 총 8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

 

백두고원의 광활함이 느껴지는 원시림(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백두고원의 광활함이 느껴지는 원시림(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 백두고원
백두고원은 백두산 정상을 포함해서 그 주변의 산지와 고원을 통틀어 이르는 용어이다. 백두고원의 시작인 용암대지는 완만한 구릉이었고, 현무암으로 덮여 있었다. 천지를 등지고 있으니 내가 바라보는 쪽은 남쪽일 것이었다.

백두고원은 광활했다. 개마고원과는 구별되는 백두산이 거느린 백두산 자락이었다. 광활한 대지가 끝나는 곳에서 끝 간데없는 원시림이 시작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백두산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으로 산봉우리들을 더듬었다. 산들은 날카롭지 않으면서 근엄했고, 불거지지 않아서 심오했다.

수많은 세월을 견뎌왔으면서 끝내 겸손하기만 한 우리의 강산이었다. 그 봉우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백두대간(북한에서는 ‘백두대산줄기’라고 한다)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생각했다.

지리산을 오르면서 나는 백두산을 생각했고, 한라산 백록담을 내려다보면서도 백두산을 생각했다. 심지어 뉴질랜드의 밀퍼드 트레킹 코스를 걸으면서도 나는 백두산을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나는 백두대간의 꼭짓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백두고원을 가로지르는 일행들(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백두고원을 가로지르는 일행들(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우리는 한 사람씩 백두고원을 향해서 걸음을 내디뎠다. 9월 중순의 화창한 날이었다. 현무암으로 덮인 용암대지는 황갈색의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화산석과 바람, 텅 빈 하늘 그리고 청량한 공기뿐인, 메아리조차 없는 개활지였다.

길이 있을 리 없는 그곳을 우리는 걸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걸었고, 우리가 걷는 길이 곧 트레킹 코스가 될 것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즐기는 전문산악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걷기만을 위해서 무작정 걷는 사람들은 더욱 아니었다. 속세에 묻혀 사느라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서,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산과 들을 찾아다니며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트레킹의 참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걷지 않았다. 때 묻지 않은 강산의 깨끗한 공기로 숨 쉬면서 자연이 부여하는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묵은 때를 벗긴다는 마음으로 걸었다. 울퉁불퉁한 구릉들과 능선들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저만큼 한 떨기 야생화가 홀로 피어 있었다. 현무암 아래에 뿌리를 내리고 돌 틈을 비집고 피어오른 야생화는 한 뼘 정도의 푸른 줄기에 노란 꽃잎을 매달고 있었다. 꽃이 필 자리가 아니었고,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 곳이었다. 천지가 생긴 이래 오래전부터 돌무더기 사이에 피어난 수많은 야생화 중의 하나였다. 나는 야생화 앞에 멈춰 섰다. 자연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과연 신비로운 자연이었다.

 

야영지에서 먹는 식사(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야영지에서 먹는 식사(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 식사와 야영
해가 기울면서 서쪽 능선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백두산 주변은 한반도에서 가장 날씨가 변덕스러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통나무를 날려버리는 바람이 불기도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구름에 둘러싸여 비를 뿌린다고 안내원이 말했다. 황갈색 대지는 진회색으로 변해갔고, 공기가 차가워졌다.

우리는 야영지를 찾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구릉 사이에서 적당한 곳을 찾았다.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미리 야영과 함께 취사에 대한 사전허락을 받아두었다. 일행이 텐트를 치는 동안 안내원들은 가스 불에 솥을 걸고 밥을 지었고, 다른 솥으로는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반찬들을 꺼내놓았다. 깻잎, 두릅장아찌, 김치, 오이지, 감자와 짚 꾸러미에 담은 달걀들이었다.

서양인들을 위해서 따로 준비한 음식은 없었다. 미리 동의를 받긴 했지만 막상 음식을 대하면 서양인들이 먹을 수 있을까 조금 걱정스러웠다. 지금까지는 호텔과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양식이든 한식이든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밥이 익는 냄새가 나자 그들이 먼저 솥 주변으로 슬금슬금 다가앉았고, 밥을 받아들자마자 맛있게 먹었다. 반찬도 골고루 먹었고 라면까지 해치웠다.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군소리 없이 먹어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배가 부르자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추위를 막는다며 쓰고 독한 도토리 소주도 한 잔씩 마셨다. 평양에서 온 안내원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안내원들은 영어가 유창했고, 외국의 사정에도 밝았다. 은빛 모래를 뿌려 놓은 듯,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손을 뻗으면 한 움큼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밤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텐트로 돌아갔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술기운이 퍼지자 금방 잠이 들었다. 밤에는 추울 것이라고 안내원들이 알려주었는데, 각오했던 것보다 추웠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제임스 안(뉴질랜드 네이쳐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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