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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기행 ④] 백두산 해돋이는 내 해돋이, 한반도기 펼쳐들었다 2

  • 장윤정 특파원 weeklykoreanz@newskorea.ne.kr
  • 입력 2021.07.22 13:19
  • 수정 2023.01.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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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뉴스코리아) 장윤정 특파원 = (편집자주: 뉴질랜드 교민 제임스 안(네이쳐코리아 대표)은 2019년 9월 10일~17일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다녀왔다. 안 대표는 뉴질랜드 국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신분이기에  한국에서 사진작가 겸 트레킹 전문가로 활동하는 로저 셰퍼드 등 7명과 함께 했다. 이 기행문은 2주마다 총 8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
 

백두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백두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 해돋이
동이 트지는 않았지만 해돋이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둠이 엷어지자 별빛이 희미해져 갔다. 아직 어두운 대지 위에는 엷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고즈넉한 안개는 신비로운 기운을 머금은 듯했다.

뽀얀 새벽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날씨는 맑을 것 같았다. 검은 능선과 희뿌연 하늘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백두산의 태양은 순식간에 온 누리를 뒤덮으며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바다를 물들이면서 올라오는 태양과 달랐고, 도시의 건물들 위로 불쑥 튀어 오르는 태양과도 달랐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나의 왜소함과 하찮음을 절감했다.

해돋이에 취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왔는지 일행 모두가 돋는 해를 향해 서 있었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이댔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잡았고, 누군가는 가슴으로 태양을 받아들였다.

해돋이는 어디에나 있다. 그렇지만 백두산의 해돋이는 나의 해돋이였고, 모두의 해돋이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의 해돋이를 찾아서 이곳에 왔다. 그래서 모두의 해돋이를 기다리고 반겼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한반도기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찬란한 햇빛 아래에 깊숙이 꽂았다.

햇볕이 말려준 대지 위에서 우리는 아침 식사를 했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밥과 라면이었고, 깻잎, 두릅장아찌, 김치가 반찬이었다. 갈 길은 멀고, 언제 먹을지 모를 밥이라고 여겼는지 다들 잘 먹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안내원들이 넓적한 대접에 커피를 탔다. 소주를 마시던 플라스틱 컵으로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이 야전삽을 들고 어디론가 갔다.

 

추운 날씨로 인해 엔진이 얼어붙어 다 함께 차를 밀어 시동을 걸었다.(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추운 날씨로 인해 엔진이 얼어붙어 다 함께 차를 밀어 시동을 걸었다.(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일행이 텐트를 걷는 동안, 안내원들은 장비와 취사도구를 정리했다. 안내원들이 자동차 아래에 모닥불을 피워서 엔진을 녹였는데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다 함께 자동차를 밀자 시동이 걸렸다.

 

■ 압록강(鴨綠江)의 시원(始原)
이슬에 젖은 만년초가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걸음은 감회와 정취에 따라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했다. 어디서는 빠르게 걸었고, 어느 지역에서는 천천히 걸었다.

우리 일행은 큰 소리로 불러야 할 정도로 길게 늘어섰다. 배낭에는 작은 한반도기(북한에서는 ‘통일기’로 불린다)가 꽂혀 있었다. 하얀 바탕에 파란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배낭에 꽂은 일행이 길게 한 줄로 서서 백두산이 만든 들판을 걸었다.

한낮의 부드러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비단 치마를 펼쳐 놓은 것처럼 주름진 구릉과 메마른 대지뿐이었다. 눈앞이 푹 꺼지면서 강이라기에는 너무 좁은, 그렇다고 개울이라고 하기에는 미안한 물줄기가 나타났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다들 미끄러지듯 물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열 길 남짓한 폭포가 있었다.

사기문폭포였다. 좁은 바위 절벽에서 세 번 나누어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 물웅덩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천지의 물이 바위틈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이며, 압록강 시원의 한 갈래라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아, 압록강! 나는 압록강 또한 우리의 강산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강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소연지봉과 대연지봉(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소연지봉과 대연지봉(사진제공 = 위클리코리아)

 

■ 연지봉(臙脂峯)
폭포 아래에서 야전 식량으로 점심을 먹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물을 부으면 더워지는 쇠고기볶음밥이었다. 가파른 돌길을 40여 분 정도 기어올랐다. 허리만큼 자란 갈대와 키 작은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길이 고르지 않아서 사람들의 간격을 좁혔다. 언덕을 넘어서자 고리 모양의 능선이 나타났다.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두 개의 봉우리는 소연지봉(小臙脂峯)과 대연지봉(大臙脂峯)이었다. 연지를 바른 듯 붉은빛을 띤다고 해서 연지봉이라는 두 봉우리 사이는 십여 리라고 했다. 대연지봉으로 올라갔다. 세찬 바람 때문일까, 정상 주변에는 마른 잡초들뿐이었다.

눈 아래 백두고원의 울창한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가 숲이었고, 시작도 없었고 끝도 없었다. 그야말로 백두산이 만든 밀림이었다. 저만큼 간백산(間白山)이 건너다보였다. 백두산과 소백산 사이의 산이라고, 안내원이 말했다.

빗물골을 따라 허리 높이의 잡목지대를 지났다. 야생동물들이나 다녔을 좁다란 길이 숲속으로 이어졌다. 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한 것이 해거름인가 싶었다. 수풀 사이로 빨간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였다. 첫 번째 밀영이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거친 길을 걸었다. 따뜻한 햇볕을 맞으면서 돌 사이에 핀 야생화들을 만났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에 흠뻑 젖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과 자신만을 생각했다. 왜 그리 다투었는지를 생각했고, 왜 그리 옹졸했던가를 생각했다.

백두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정말 몰랐다. 백두산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고, 유혹하지 않았으며, 칭찬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백두산은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과연 백두산에는 특유의 비경(秘境)이 있었고, 그것은 한반도의 자랑이었다. 특유한 것은 특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이어서가 아니었고, 내가 한국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세계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고유한 정취였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계속
글쓴이: 제임스 안(뉴질랜드 네이쳐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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