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보고] 라스베가스 특집 연재! 제 1 부 라스베가스의 탄생과 마피아의 진입

- 제1부: 라스베가스의 탄생과 마피아의 진입 - 제2부: 카지노, 돈세탁의 장으로 - 제3부: 정부의 반격과 마피아의 쇠퇴 - 제4부: 라스베가스, 새로운 장을 펼치다

2024-10-04     문성원 특파원

(뉴스코리아=라스베가스) 문성원 특파원 = 1930년대 라스베가스는 도박 합법화의 물결 속에서 미국의 '아메리카의 놀이터'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도시의 초기 발전은 벤자민 "버그시" 시겔과 같은 마피아 인물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시겔은 플라밍고 호텔 개장을 통해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이 뒤에는 불법 자금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2부/3부/4부(마지막 회) 로 진행을 하겠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점설의 마피아 두목 버그시 시걸과 그와 연관된 사람들

 

**[제2부: 카지노, 돈세탁의 장으로]**

1950년대와 60년대, 라스베가스는 마피아의 자금 세탁소로 활용되었습니다.

카지노는 단순히 게임을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불법 자금을 합법화하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돈세탁 방법으로는 가짜 회계장부 작성, 위장 회사를 통한 허위 계약 체결, 그리고 국제 은행을 이용한 자금 이동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마피아가 그들의 자금을 보호하고, 세금 조사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제3부: 정부의 반격과 마피아의 쇠퇴]**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 정부는 마피아의 카지노 사업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단속을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법적 제재와 철저한 감시체계의 구축으로 마피아의 영향력은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은 라스베가스를 투명한 기업 운영이 이루어지는 도시로 탈바꿈시켰으며, 이는 도시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점설의 마피아 두목 버그시 시걸과 그와 연관된 사람들  @Pinterest

 

 

**[제4부: 라스베가스, 새로운 장을 펼치다]**

오늘날 라스베가스는 과거의 마피아 그림자를 벗어나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및 휴양 도시로 재탄생하였습니다.

마피아 시대의 흔적은 관광 산업과 문화적 맥락에서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으며, 이는 도시의 복잡한 역사와 성장 이야기를 관광객과 연구자들에게 제공합니다.

그러나 현재 라스베가스는 법적 규제와 국제적 기준에 따라 운영되는 글로벌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역사는 마피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을 반영하며, 그 변화는 미국 도시 발전사에서 중요한 장을 차지합니다.

이중 오늘은 [제1부: 라스베가스의 탄생과 마피아의 진입]편 입니다.

 

버그시 시걸을 위시한 1940년대 초기의 마피아들 @Pinterest

 

**[제1부: 라스베가스의 탄생과 마피아의 진입]**

1931년, 네바다 주 정부가 도박을 합법화하면서 라스베가스는 '아메리카의 놀이터'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는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범죄 조직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초기 발전은 특히 벤자민 "버그시" 시겔 같은 인물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겔은 마피아와 연계된 비즈니스맨으로, 도시의 호텔과 카지노 건설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 플라밍고 호텔은 1946년에 개장했으며, 라스베가스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텔 건설 뒤에는 불법 자금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피아는 전국적인 불법 도박과 주류 밀매, 그리고 마약 밀매를 통해 얻은 자금을 라스베가스의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 경제에서 그림자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라스베가스는 그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플라밍고 호텔의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는 회계 조작과 비자금 조성, 강력한 폭력을 통한 대출 상환 요구와 같은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편법과 범죄 활동은 라스베가스의 이미지를 흐리게 했지만, 동시에 도시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초기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피아 사건 중 하나는 벤자민 "버그시" 시겔의 암살입니다.

1947년, 시겔은 자신이 투자하고 건설한 플라밍고 호텔의 개장 후 몇 달 만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 사건은 라스베가스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시겔은 플라밍고 호텔을 만들기 위해 마피아와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유치했지만, 프로젝트의 비용이 계획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면서 많은 이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개장 초기의 실패와 재정적인 문제들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긴장과 불만을 증폭시켰고, 마피아 내부에서도 그의 위치는 불안정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시겔은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스의 자택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시겔의 죽음은 마피아 간의 충돌과 배신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마피아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해야 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 사건은 또한 법 집행기관에 마피아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마피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단속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초기 역사를 돌아보면, 마피아의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도시가 관광과 오락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 자원을 제공했으며, 이는 라스베가스의 오늘날 모습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대가 또한 만만치 않았으며, 이는 라스베가스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과 기회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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