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노후생활] 무미 건조한 일상을 대하는 태도
-인생2막은 관심을 끌 만한 일이 빈곤해지는 시기 -단조로운 일상을 파괴할 리부트와 에디톨로지 필요 -모작과 위작의 인생보다는 자기 주도적 삶이 중요 -그것이 시시한 일상의 연속일지라도 소중하다
(서울=뉴스코리아) 신종국 논설위원 = 보통 60세가 넘으면 인생2막이 시작된다. 사람에 따라 일부 예외는 있긴 하지만,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숙명이다. 또한 우리가 겪는 일상이 드라마 같지 않아서 늘 그날이 그날같은 삶이었다 할지라도 60세를 맞이하는 순간은 인생의 반환점인 동시에 가장 큰 사건 임에는 틀림없다.
더구나 과거의 기억할 만한 일화도 없었고 현재도 밋밋한 일상이라면 젊은 시절의 왕성한 혈기를 소환해서라도 세상사에 다시 한번 매진하게 할 이유를 찾게 만드는 기회라는 점에 모두가 공감한다.
그 동안 삶의 방식을 탈피하여 인생2막에는 보다 자기 주도적 삶을 살고 싶다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되묻고, 거울 앞에서 청춘의 뜨거운 피를 소환하려 기를 쓰는 만용도 불사해야 한다.
만약 이 조차도 게을리한다면 우리의 삶은 시간의 파괴성 앞에 인생의 사건만 점점 빈곤해질 것은 자명하고, 시간의 횡포에 무기력해 질 것이다. 더구나 시시한 일상을 소재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 나누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습관은 액티브한 인생2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기에 충분하지만, 현대인에게 있어 무미 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거부하는 시대적 정체성이 “인생 별거 없다”는 인생 철학의 심리적 낭비를 막아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인생2막 진입 단계에서 은퇴자들이 치르는 홍역같은 클리셰에 빠지는 보편성은 아쉽다. 과거 기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클리셰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거나 혹은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접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보편적인 경우 하나는 과거의 지위와 사회적 위치에 대한 집착과 자기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의 소식에 삶을 비교하며 흔히 하는 말로 내려놓지 못하는 클리셰다.
또 하나는 과거는 미완성 된 상태이고, 앞으로 완성을 이룰 것이라는 클리셰다. 전자는 노스탤지어 이고 후자는 미래 도피 이다. 둘 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너무 집착하면 웰 에이징의 독이 된다.
결과적으로 인생의 단조로운 중립지대의 확장과 넓어진 삶의 그레이 죤으로 인해 도끼자루는 필연적으로 썩을 수 밖에 없다. 야단법석을 원하지만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연례 행사인 클리셰를 줄이고 보편성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 주도적 일상의 반복이 주는 위안을 기초하여 표절이 아닌 모방과 편집을 통해 새롭게 도전하는 삶의 영역을 창조해 보길 권한다.
그 방법의 하나는 “새로고침”, 즉 리부트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초기화하는 방법으로 인생 2막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감정의 눈치밥을 멈추라는 것이다.
이타적 삶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 삶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평생하던 행위를 고치기는 십지 않지만 이미 단조로운 일상에 진입한 이상 변화를 주는 시도는 나이스하게도 과거에 시도해 성취했던 비슷한 전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늘 갈망했던 것들을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겪지만, 이 과정 또한 이미 경험해 본 스토리 범주내에 있기에 안심되고 실패없는 반복의 위안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제안은 에디톨로지 이다. 어쩌면 인생은 편집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호모사피언스는 강력한 지배종이지만 혼자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상호간 주고 받는 관계가 주는 피할 수 없는 영향력을 통해 죄책감 없이 표절을 서슴지 않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다만, 크리미널은 예외다. 이러한 특징은 인생2막을 다양한 방식으로 개척해 나가는 선구자들을 많이 배출한다.
그들의 성공적인 사건들과 스토리는 매체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필자가 제안하는 인생 2막이 편집은 이것과는 결이 다르다. 무조건 따라하자는 것이 아니고, 따라쟁이를 하되 나만의 독특한 삶의 숨결을 불어넣어 자신의 것으로 재편집하라는 점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모 방송 프로그램이 로망이 된 시대, 그 시대의 한 개체로서 부러워하지만 말고 행동에 옮겨라, 인생을 재편집해 보자.
그러나 둘 다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편안한 방식 때문에 더는 바꾸고 싶지 않은 자기방어 논리를 찾아내는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 논리가 주는 폐해는 주관적이지만 크다.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삶을 따라하고, 한 술 더 떠 위작의 삶을 살면서도 모르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하기에 적어도 자기 주도적 삶을 위해 소재를 찾는 노력은 필수다.
우리는 여전히 화려한 삶,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는 셀럽에 마음이 끌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욕심내지 않고, 소중한 현재의 것들을 지키며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한 번의 삶, 모작과 위작이 아닌 우리가 써내려 가는 자기 주도적 삶이라면 시시한 일상이라도 곧 우리의 삶이다.
반면 항상 삶이 버라이어티 할 수는 없다. 그 또한 벅찰 것이다. 그래서 1,2막을 나누지 못해 지속되는 중립은 주어진 삶의 시간과 반비례하는 이유가 아닐까. 무미 건조한 시간은 늘어날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잿빛 일상이 찾아와 우리를 흔들 것이다. 그럴수록 자기 주도적으로 삶의 주도권을 잡고 유효기간에 끊임없이 대항하라.
시시한 일상이라도 삶의 방향성의 키는 우리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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