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한국인] 치어스 인 하와이(Cheers in Hawaii) - "아이들 교육도 '꽃꽂이' 처럼" - 샤인 리-
'꽃꽂이 교육철학으로 꽃꽂이 하듯이 키웠어요" "부모를 중심으로 자녀들을 함께 모아 교육해야"
하와이 이민사회속 우리 동포들의 미소와 희망, 그리고 애환의 휴머니티를 발굴해 시리즈로 기록해 나가고자 한다.
-김찬훈 특파원-
편집자 주 본지 김찬훈 하와이 특파원은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와이키키를 비롯한 하와이의 다채로운 명소 소개는 물론, 사건, 사고 현장 취재와 함께 하와이내 한인 이민자들의 삶을 재조명 하기 위해 다양한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김 특파원은 하와이 한인들의 소담스러운 삶의 이야기들을 '치어스 인 하와이'(Cheers in Hawaii)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뉴스코리아=호놀룰루) 김찬훈 특파원 = 첫 순서는 16년 째 호놀룰루에 거주하는 외유내강형 어머니, 샤인 리(59, 여)의 스토리다.
한 송이 꽃을 홀로 놔두면 보기에도 가냘프고 금방 시들어요. 하지만 각양각색의 꽃을 한데 모아 꽃꽂이 하면 풍성한 아름다움을 주고 또 생명력도 길어지지요.
인생이나 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홀로 사는 인생은 건조하고 재미가 없어요. 형제 자매인 아이들도 성격과 소질이 모두 다르지만, 부모를 중심으로 함께 모아 교육하면 아름답고 알찬 성과가 나온다고 믿어요. 저는 세 자매를 꽃꽂이 하듯이 키웠어요
하와이 이민 17년차 샤인 리의 '꽃꽂이 교육철학'이다. 늘 꽃을 고르고 다듬고, 모으는 등 꽃과 같은 삶을 살아서일까.
60대에 접어 드는 나이이지만 그녀의 얼굴은 화사하고 자태는 꽃대 처럼 하늘거린다. 자못 그녀의 이민생활이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그녀는 꽃길만 걸었을까.
그녀는 세 자매 모두 남들이 부러워하는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냈다. 큰 딸은 예일대, 둘째는 동부의 명문 여대인 마운트 홀리오크, 그리고 막내 딸은 프린스턴대 재학생이다.
미국 이민가정의 최대 목표는 자녀들의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진학이라는 점만 놓고 보면 그녀는 복권을 세번이나 당첨된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하지만 이런 엄청난 교육성과를 이루기까지 그녀의 눈물은 흘러 흘러 와이키키 앞바다의 파도가 됐다. 또 그녀의 한숨은 언제 부턴가 그녀를 말수 없는 아줌마로 만들었다.
조용하지만 강한 여자, 강하면서도 늘 꽃 처럼 부드러운 삶을 즐기는 여인 샤인 리. 외유내강의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녀의 '치어스 스토리'가 궁금해진다.
"아이들에게 보다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이것저것 재지 많고 미국 이민행을 결심했어요. 속성으로 일을 결정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민 초기에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아유, 지금 생각하면 다 지나간 일이라 추억 처럼 쉽게 쉽게 말해줄 수 있지만 당시 고민과 불안은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지요. 아침에 눈 뜨면 한 숨으로 시작해 저녁에는 눈물 한 방울로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와중에도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줘 큰 힘이 됐어요".
이민 초기 그녀 역시 믿었던 지인으로부터 큰 돈을 들여 인수한 사업을 자진폐업하면서 경제적으로 암흑기를 보냈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은 신세로 전락하니 이민생활에 대한 회의감과 자괴감은 갈수록 커졌다.
"처음 간 곳은 LA였어요. 한국에서도 업으로 삼았던 장사노하우를 살려서 의류와 생필품 도매업을 시작했는데 이전 업주의 호언장담과 달리 갈수록 사업실적이 부진했어요."
이민 1기가 힘들었다면 이민 2기는 희망차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온 가족을 이끌고 하와이에 터를 잡았다. 호구지책으로 수익성이 좋다는 식당을 지인으로부터 인수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많은 손님이 찾더니 점차 파리를 날리기 시작했다. 두번째 실패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은 바닥이 났고, 모은 돈도 없었다.
삶이 힘들 때도 저는 늘 아이들과 독서하며 책 내용에 대해 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물어봤어요. 또 한 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해보라고 권했어요.
"어린 세 딸을 잘 키우려고 어려운 이민을 감행했는데, 모든 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고 갈수록 형편이 어려워지자 눈 앞이 캄캄했어요. 아이들 교육은 뒷전이고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어요. 그때 부터 저는 기도와 독서에 매달리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틈만 나면 산과 바다로, 그리고 동네 도서관으로 내달렸어요".
주변 사람들은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책만 읽는 그녀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삶에 자신감이 붙고 가슴 속에서 뭔가 희망이 차오르는 것을 느겼다. '궁즉통'이었을까.
"어려운 여건과 형편이었지만 저는 늘 아이들과 독서하며 책 내용에 대해 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물어봤어요. 또 한 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해보라고 권했어요. 아이들 의견을 경청하기도 했고, 제 의견을 던져주기도 했고, 때로는 세자매와 난상토론도 했지요".
그녀의 교육방법이나 독서법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유대인들의 자녀교육 비법인 '하브루타'와 유사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큰 딸은 영문학을 전공했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다른 딸들도 모두 인문학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녀가 처음부터 '하브루타식 교육이론'을 인지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지도했던 것일까.
교육이든 사업이든 방향을 잘 잡아야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요
"저는 하브루타니 하버드식 공부법이니 하는 이론을 잘 알지 못해요. 다만 제 신념대로 방향을 정하고 기도로 힘을 얻어 지속성 있는 교육을 전개합니다. 교육이든 사업이든 방향을 잘 잡아야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요. 아이들 교육분야에서는 저의 신념대로 추진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사업은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세 자녀는 모두 본토 명문대학생이 돼서 그녀 곁을 떠났다. 그녀는 요즘 한 한인교회의 권사 직분을 맡아 봉사를 실천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사랑하는 자녀들을 잘 양육했던 정성과 실력을 교회 성도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진리는 너의 것'이라는 성경말씀을 저는 믿습니다. 저 역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앞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열심히 기도하고 두드렸더니 정말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어려운 성도들이 부르면 저는 어디라도 달려가 함께 기도하고 해법의 문을 열어달라고 같이 두드리고 싶습니다".
그녀가 출석하는 한인교회에는 늘 새로운 꽃향기가 은은하게 흐른다. 그녀의 꽃꽂이는 오늘도 하와이 동포들에게 새로운 응원의 향기를 제공하고 있다.
"모두 힘내세요. 그리고 진심으로 사력을 대해 두드리세요". 그녀의 체험담이 싱그럽게 하늘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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