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치매 걸린 황소의 기도 [1화]
치매 걸린 할머니, 다른 건 다 잊어도 어릴적 추억은 생생히 기억해 할머니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어린시절 추억속으로 가는 공감여행
편집자 주 김무성 기자는 하와이에서 할머니,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살며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본지 최초의 고교생 동포 기자입니다.
또한 김무성 기자의 할머니께서는 치매환자이기에, 한국에 홀로계신 할머니를 하와이까지 모셔온 이유도 치매증상이 심해져 가족의 적극적인 사랑과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김무성 기자는 의료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 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 기자는 뇌신경을 연구해 치매 등 뇌신경 관련 질환으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에게 삶의 즐거움과 건강한 일상을 제공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본 칼럼은 김무성 기자가 치매 할머니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보호하며 느낀 점 위주로 시리즈로 작성해 나갈 예정입니다.
아울러 할머니와의 추억과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한편 예비 의료인으로서 할머니가 치매를 극복하도록 도와서 보다 의미있고 아름다운 여생을 살아가도록 지원할 각오로 칼럼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코리아=호놀룰루) 김무성 기자 = 하와이로 오신 할머니가 오늘도 눈을 감고 웃으신다.
할머니는 치매환자다. 할머니는 가끔 이렇게 눈을 감고 옛 추억을 회상하신다.
할머니는 집주소, 가족 휴대폰번호는 잊어도 어릴적 추억은 갈수록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말씀하신다.
할머니의 옛 추억속 세상이 궁금해 따라가본다.
1940년 4월 봄, 백목련꽃이 눈발 처럼 흩날리던 날, 충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응 애"
"어따, 고놈 울음 소리 한번 황소 마냥 우렁차구나. 아들이냐?"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어둑어둑 밤기운이 가득한 앞 마당을 한 노인이 뒷짐을 진 채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농촌 노인 답지 않게 이른 새벽에도 단정하게 옷 매무새를 갖췄다.
하지만 영감님은 목이 타 들어가는 듯 안마당 우물에서 갓 퍼올린 물 한바가지를 요란스레 들이키며 계속 안방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언내 울음 소리를 들으니 천상 고추인디. 어떠냐, 내 말이 맞는겨?"
하지만 안방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이것들이 귓 구녕이 맥혔나 왜 그려 이? 대답을 왜 안허여 들?"
"저기, 어르신, 또 딸유. 이를 우쩐대유?"
"뭐셔? 딸이라구? 아니 울음소리가 황소 마냥 대찬거 보니 분명히 아들일텐디? 또 쓰잘데기 읎는 딸년이면 더 볼것두 읎지 으이그 속 터져"
할머니의 아버지는 이렇게 역정을 내시며 그 새벽에 집 밖으로 사라졌다. 갓 태어난 딸의 달덩이 같은 얼굴 한번 쳐다보지 않은 채.
그 이후 '황소 목소리를 가진 할머니(우년 : 소 닮은 여자아이)'는 할아버지로부터 외면과 구박을 받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막내딸이 됐다.
"저 년은 목소리만 컸지, 넘의 새끼들 다 달고 나오는 고추 하나 못달고 나왔댜. 으이그 이 화상아, 밥만 축내지 말고 나가서 부지런히 밭일허구 논일이나 혀!"
"아부지! 지는 국민핵교 안가유? 순자랑 미순이랑 다 국민핵교 들어간대유"
"뭐셔? 이 지지배가 어따대구 핵교 타령여? 지지배가 배워서 뭐혀? 이? 지집년이 자고로 많이 배우면 시끄럽게 쨍알만 댈줄 알지, 아무짝에도 못쓰는 벱여. 나가서 니 어매 밭일이나 도와주는 게 니 밥벌이여!"
"싫어유! 나 핵교 보내줘유!, 공부헐래유!"
"아니 이 후랴들년 좀 보게! 당장 일허러 안나가?"
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하고 미워했다.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우년이'는 아버지의 반대로 학교 대신 들판으로 나가야 했다.
이제 겨우 8살, 어린 '우년이'는 슬프게도 책 대신 농사도구인 호미와 낫을 들어야 했다,
반면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할머니의 오빠는 버젓이 국민학교 학생이 됐다. 아버지는 소위 '딸라빚'을 내서라도 딸 대신 아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철석 같이 믿는 분이셨다.
"아들은 내 핏줄의 대를 이을 보물여. 그런디, 딸 년들은 시집 보내면 그만 아닌가, 넘의 집 식구가 될 터인디 뭐허러 가리친댜.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을 판국에?"
아버지는 이런 이유로 늘 딸들을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런 집안 환경 탓에 '우년이'는 어려서부터 10살 터울 언니와 함께 농사일, 부엌살림, 땔감 마련 등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도 못받는 딸이었지만 황소 처럼 우직하고 건강한 신체를 갖고 테어난 '우년이'는 동네에서 소문난 어린 일꾼이었다.
"우년이는 어린 것이 참 일두 야물딱지게 잘혀. 어린 것이 울매나 손이 야무지면 설거지 허구 난 그릇들좀 봐, 우째 저래 반짝반짝 윤이 난댜?"
"내 말이 그 말여. 재는 착허지, 일 잘허지, 거기다가 황소 저리가라헐 정도루 건강허지, 복뎅이여 복뎅이구 말구!"
"맞어 맞어 우년이는 나중이 된방에다 놨다가 씨 허야 혀"
"재는 황소 같어, 밤낮으루 일해도 힘들지도 않은 모양여. 재가 가꾸는 벼며 보리, 콩, 팥, 들깨들은 워떠케 저리 튼실허게 잘 자란댜. 재는 타고난 농사꾼여"
"어린 것이 대견허지, 암만"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와 달리 '우년이'를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다.
하지만 어린 '우년이'는 언제나 외롭고 허전했다. 같은 동네 또래들 중 먹고 살 만한 형편을 가진 집안의 친구들은 학교에 다녔다.
나머지 친구들은 늘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거들었다. 따라서 '우년이'는 늘 언니와 둘이 다녔다.
봄이면 밭둑에 홀로 자란 찔레나무 아래 앉아 찔레순도 따먹고 꽃반지도 만들었다.
그나마 어머니는 다정한 분이셔서 언니 보다 '우년이'는 어리다는 이유로 자주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우년이'의 유일한 친구는 집에서 키우던 일소 누렁이였다. '우년이'는 늘 누렁이와 붙어 다녔다. 누렁이는 먹성이 좋아서 '우년이' 옆에 매어 놓으면 혼자서 풀을 뜯었다.
'우년이'는 찔레꽃 공예가 시시해지면 뒷동산 아카시아 언덕으로 누렁이를 끌고 갔다. 아카시아 꽃은 찔레꽃보다 향도 좋고 맛도 달콤했다.
누렁이와 아카시아꽃을 누가 더 빨리 먹나 시합을 하다보면 금방 휴식시간이 끝나고 어머니의 호출이 이어졌다. '우년이'는 일어나 밭으로 달려가야 했다.
무더운 한여름. 대지가 타들어가는 땡볕을 무릅쓰고 '우년이'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는 쉼 없이 논밭으로 나가 고단함과 겨뤄야 했다.
한낮 중턱에 소나기가 내리면 즐거웠다. 소나기 덕분에 꿀 같은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년이'는 누렁이와 웅덩이로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가슴 한켠에 자리 잡은 허전함을 잠시 잊었다.
가을 들녘은 더욱 아름다웠다. 재너머 산밭으로 가는 오솔길에는 각종 들꽃과 들국화가 만개해 서로 향기를 뽐내며 춤추고 있다.
매와 솔개는 겨울이 오기 전 몸보신을 하느라 번갈아가며 지상과 하늘의 표적을 추적하고 있다.
누렁이는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밭에는 감히 접근하지 못한 채 아직 성성한 들풀을 끊어 먹느라 입을 쉴새 없이 놀리고 있다.
단풍이 찾아오기 직전 노란 이파리를 펄럭이는 가을 느티나무 아래 누워 있는 한 소녀 '우년이'다.
부쩍 자란 머리를 쓸어올리며 만세 팔베개를 하고 나무 밑에 누운 '우년이'는 파란 하늘을 수놓은 뭉게구름을 보며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수 놓을지 고심하고 있다.
"국민핵교 다니는 미자는 얼마나 신날까. 한글을 배우면 나도 소설책을 읽고, 시도 읽고, 편지도 써볼텐디.."
'우년이'는 또래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학교를 다녀오는 상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단꿈도 잠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며 자리에서 일어나 누렁이를 끌고 밭 주변으로 달려간다. 산들거리는 가을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단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겨울 시골집 정경은 춥지만 정다웠다. 집뒤 감나무에 매달린 고시래 감을 서로 따먹으려 경쟁하는 까치들은 마치 춤을 추는 듯 보였다.
집집마다 군불을 때기 위해 가으내 준비한 장작더미가 처마 밑을 담벼락 처럼 꽉 채웠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겨울저녁 하늘은 밥짓는 연기로 하얗게 물들었다.
잘 익은 김장김치를 썰어 양은냄비에 한가득 담고 돼지비계와 함께 끓이는 짠지찌개 냄새는 담을 타고 이웃집으로 넘어갔다.
'우년이'는 겨울에도 놀기 보다는 집안 일을 도와야 했다.
아침 저녁으로 누렁이 여물을 썰고 끓여야 했다. 저녁 무렵이면 마른 짚을 누렁이 잘 곳에 깔아주는 것도 주요 일과였다.
덕분에 누렁이는 언제나 '우년이'가 다가가면 깔깔한 혓바닥으로 우정을 표시했다.
엄동설한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엄청나게 추운 시골 겨울이었지만 누렁이와의 따뜻한 우정으로 영하 20도의 강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구박밥도 밥이기 때문에 '우년이'는 어느덧 소녀에서 건강한 황소 같은 처녀로 성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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