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한국인] 치어스 인 하와이 - "내 가슴에는 '용기 그릇'과 '정 그릇'이 있다" - 수잔리

'용기 그릇' 내묭물은 "여성 유학생, 가방무역업체 사장, 부동산금융 전문가" '정 그릇'엔 "재판받는 한인 대상 통역요원, 고객을 부자로 만들기"등 담아 하와이대서 재무학 전공한 부동산투자전문가로 골프장, 호텔 투자자 대리

2024-08-02     김찬훈 특파원
수잔리씨는 현재 하와이 호놀룰루에 거주하는 미국부동산 투자금융 전문가이다. 1980년대 초 미국 유학길에 올라 재무학을 전공했고, 중소기업 사장, 한인 대상 법원 통역요원 봉사 등으로 전문성과 휴머니티를 동시에 키워왔다. 현재 호놀룰루 소재 'Locations 부동산회사'에서 럭셔리 콘도, 호텔, 골프장 대상 국제투자자들에게 컨설팅 및 금융조달자문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뉴스코리아 김찬훈 특파원

 

 

[치어스 인 하와이 - Cheers in Hawaii]

하와이 이민사회속 우리 동포들의 미소와 희망, 그리고 애환의 휴머니티를 발굴해 시리즈로 기록해 나가고자 한다.
 

-김찬훈 특파원-

 

편집자 주  본지 김찬훈 하와이 특파원은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와이키키를 비롯한 하와이의 다채로운 명소 소개는 물론, 사건, 사고 현장 취재와 함께 하와이내 한인 이민자들의 삶을 재조명 하기 위해 다양한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김 특파원은 하와이 한인들의 소담스러운 삶의 이야기들을 '치어스 인 하와이'(Cheers in Hawaii)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용기 그릇'과 '정 그릇' 둘 다 갖고 있는 큰 누나 스타일

 

(뉴스코리아=호놀룰루) 김찬훈 특파원 = 수잔리(67, 여)는 딱 보면 큰 누나 같다. 체격도 크고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것은 '용기 그릇'과 '정 그릇'이다.

'용기 그릇'은 배포와 담대한 호연지기를 담는 그릇이다. '정 그릇'은 다정하고 배려심 깊은 측은지심을 담는 그릇이다.

"영어를 잘 하고 싶었다. 억센 억양을 가진 경상도 여자가 아닌 기름을 바른 듯 혀를 잘 굴리는 영어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82년도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왔다". 

1982년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안정된 공직도 포기하고 혈혈단신으로 미국 본토로 갔다는 그녀의 용기가 무모하기도 대단하기도 하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모두 반대하는 미국행을 결정하고 나서 사실 마음속으로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컸었다. 하지만 나는 도전하고 싶었다. 도전하는 인생이 멋있지 않은가. 당시 내 선택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을 홀로 간다고 나섰으니 주변에서도 겉으로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박수 쳤지만, 뒤로는 겁 없고 철 없는 '가시나'라고 수근거렸을 것"이라고 그녀는 회상했다.

그녀가 하와이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정착한 것도 '도전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한다.

"82년 미국 동부로 갔지만 1년후 하와이로 방향을 틀었다. 그냥 하와이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동부가 워낙 방대한 지역이라 황량한 감도 있었고, 알아보니 하와이가 보다 안전한 지역이라고 소문이 났더라. 나는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숙고는 하되 판단이 서면 신속하게 결정하는 편이다. 우유부단한 것도 싫고 시간을 질질 끈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무역회사 CEO 거쳐 럭셔리 콘도, 골프장, 호텔 투자희망고객 대상 컨설팅 제공

이후 그녀는 하와이대학교에서 재무학을 전공했다. 이후 가방제조업 비즈니스를 거쳐 고객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부동산 투자금융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80년대 초반 한국 정치경제 환경이 썩 좋지 않던 시절, 유학온 이후 가장 큰 숙제는 경제적인 부담이었다. 집안의 도움을 바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유학자금 및 생활비를 홀로 해결해 나갔다. 

"주말 프리마켓(임시 가설 시장) 직원, 식당 서빙요원, 법원 통역요원 등 많은 아르바이트를 거쳤다. 스스로 돈을 벌어 생존해야 했기 때문에 좋고 나쁜 아르바이트를 가릴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여러 직종에서 일한 경험이 나중에 비즈니스을 운영할 때 여러 면에서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 가방 무역업체를 창업해 한동안 성장세를 구가했던 비즈니스우먼이었다. 미국의 대형 유통체인 월마트에도 제품을 납품할 정도로 회사 규모를 키우기도 했다.

"대학 졸업후 23년간 가방무역업에 종사했다. 무역업이라는 게 전공과 무관하지 않고 많은 바이어나 셀러들과 늘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즐겼다. 나는 지금까지 여자라는 이유로,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거나 차별을 당한 사례가 없다. 늘 자신감과 당당함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고 고객을 사랑하니 다들 인정하고 존경해주더라"고 술회했다.

 

'고객이 말을 마칠때까지 기다리자',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 말자'

고객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먼저, 솔직한 대화. 이것이 그녀의 비즈니스 신념이다.

"나도 성격이 불 같고 급하기로 따지면 1등일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고 상대를 키울줄 알아야 한다. 고객의 말 속에 '수요량과 공급량'이 녹아 있기 때문에 중간에 말을 끊으면 비즈니스의 성공을 보장받지 못한다. 또 진실이 전문성이다. 어줍잖은 지식은 전문성을 오히려 해친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솔직히 모른다고 말하고 상대의 설명을 구해야 한다. 이후 스스로 공부해서 전문성을 갖추면 되는 것"이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그녀는 지금 하와이에서 유명한 부동산 투자금융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전공인 재무학을 십분 활용해 고객의 재산을 증식해주는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비즈니스 운영 경험, 돈의 흐름을 읽는 재무학 전공자. 이런 경력은 부동산 투자금융 전문가가 되기 위안 자기단련 과정이었다. 부동산 인수자금 마련 컨설팅, 부동산 업그레이드 상담 등을 통해 고객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을 비즈니스 모토로 정했다. 실제로 나를 만난 고객들은 모두 부자가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녀는 고객과 자주 김치찌개를 먹으며 재정상황이나 희망사항을 청취한다. 

"김치찌개는 제가 미국에 와서 40여년 째 즐기는 '다정한' 음식이다. 공부할 때도, 지금도 즐겨 먹지만 고객을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도 김치찌개를 즐긴다. 매운 김치 찌개를 먹다보면 입가가 벌개지는 자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매운 맛을 달래려 입을 벌려 '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간의 벽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김찌지개를 먹고 싶은 사람은 언제라도 전화를 달라"며 그녀는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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