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호 특파원의 사진으로 떠나는 코카서스 여행-14
백만 송이 장미 와 조지아 국민 화가 피로스마니 3
편집자주 박철호 특파원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여행정보, 유학정보, 현지 소식등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코카서스 여행을 박철호 특파원과 사진으로 함께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뉴스코리아=트빌리시) 박철호 특파원 = 이번 시간에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 와 마가리타 그리고 피로스마니 그림의 가격등을 알아본다.
1969년 조지아 화가 최초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 개최
피로스마니의 사망 50년뒤 1969년 조지아 화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회가 개최 되었다.
그의 죽음 이후 피로스마니는 러시아, 프랑스외 유럽등에서 '순정파(로맨티스트)'화가로 존경 받으면서 국제적인 명성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로스마니가 사망하고 50년 뒤인 1969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소련(조지아)대표단은 마가리타에게 전해줄 피로스마니의 편지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인 관계로 소련인들이 외국인과 의사 소통을 할경우 외교적 복잡한 문제가 발생될수 있어 편지를 마가리타에게 전하지는 못했다고 한다.(조지아는 자카프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즉 소련에 1922년 포함 되었다.)
그러나 이 편지가 어디로 갔는지 마가리타에게 전달이 되었는지 어떤 내용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는 일주일간 진행 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피로스마니가 누구인지 몰랐던 프랑스 미술계와 방문한 관객들은 적성 국가였던 소련의 작은 지역인 조지아 출신 화가에 대한 극찬이 쏟아 졌다.
당시 전시회에는 하루도 빠짐 없이 참석한 노파가 있었다.
전시회 관계자들과 취재진은 이 노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어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피로스마니라는 프랑스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전시회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 오는 노파. 그리고 노파는 전시회 마지막날 전시 되어 있는 "여배우 마가리타" 그림 근처에 오랫동안 서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 노파가 바로 “마가리타” 였다. 그녀는 이미 80 세가 넘어 있었다.
마가리타의 인터뷰 내용
기자와 전시회 관계자는 울고 있는 노파에게 인터뷰를 하게 된다.
■ 기자는 노파에게 “피로스마니를 아시냐고? 왜 하루도 빠짐 없이 오시는지 그리고 지금은 왜 울고 있는지” 눈물을 흘리던 노파는 “마가리타” 그림옆에 섰다고 한다
◆ “이 그림속 주인공이 바로 나 입니다”라고 말을 하며 기자에게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나를 사랑한 사람은 피로스마니 밖에 없었고 나도 지금까지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 기자는 왜 피로스마니를 떠났는지를 물었고...
◆ 마가리타는 “그때는 사랑 보다는 화려한 생활이 먼저 였다”고 답했다고 한다.
“피로스마니”의 애절한 사랑이었던 “마가티타” 그녀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당시 80세가 넘었던 마가리타는 1969년 전시회후 사망 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1920년 부터 피로스마니 관련 논문이 출판되다.
피로스마니 관련된 책과 논문은 1920년부터 출판된다.
Pirosmani에 대한 첫 번째 논문은 1926년에 조지아어, 러시아어 및 프랑스어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Pirosmani 그림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1950년대 부터 증가 하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Pirosmani ”라는 제목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
파플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그(피로스마니)는 나(피카소)에게 인물화 스케치에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그림에서 나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라고 이야기 했다.
피로스마니의 전시회들
터키 신문에 피로스마니의 전기가 연재 되기도 했으며 그의 작품 전시회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1931), 폴란드 바르샤바 (1968), 프랑스 파리 (1969), 오스트리아 비엔나 (1969), 프랑스 니스와 마르세유 (1983), 일본 도쿄 (1986), 스위스 취리히(1995), 프랑스 낭트(1999)에서 열렸다.
이태리 튜린(2002), 우크라이나 키예프 , 터키 이스탄불(2008), 벨라루스 민스크, 프랑스 베젤레, 그리고 리투아니아 빌뉴스 (2008-2009), 오스트리아 비엔나 (2018/19).
비엔나 전시회 영상
「현재 피로스마니의 작품들 현황」
현재 그의 작품 중 146 점이 조지아 미술관에 전시되고 16 점의 그림이 시그나기(Sighnaghi )역사 민족 박물관 2층에 전시되어 있다. 트빌리시에는 피로스마니의 기념 동상이 설치되었다.
조지아의 시그나기 지역인 미르자아니(Mirzaani)에 Niko Pirosmanashvili 미술관과 그가 살았던 집이 박물관으로 보존 되어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도 그의 박물관이 있으며 러시아 사람들은 피로스마니가 러시아 화가라고 이야기 한다고 한다.
소련 시절 러시아 부호들과 미술가등 예술인들은 피로스마니 그림을 많이 구입했고 소장했다.
피로스마니의 현재 그림 가격 소더비 (Sotheby's ) 자료에 의하면 소더비 (Sotheby's ) 경매장에서 $ 917,000 USD (한화 약 십억원)에 판매 된 “시냇 물 마시는 사슴 (Roe Deer Drinking from a Stream)”
1908 년작 “ 아스란 언덕의 밤 ( Arsenal Hill at Night) 은
최초 경매가 $ 1,200,000 USD 예상 하였으나 최종 낙찰가
$ 1,832,000 USD (한화 약 20억원)에 낙찰 되었다.
“아스란 언덕의 밤” 작품은 러시아 예술가 르리아 즈바네츠 (Llia Zdanevich)가 1913년 트빌리시를 방문하여 두까니(조지아어로 선술집, 호프집 또는 펍)에 걸려 있는 피로스마니의 그림을 보고 “천재의 그림을 보았다” 고 기뻐하며 피로스마니의 그림인 “아스란 언덕의 밤”외 다수의 작품을 사가지고 러시아로 돌아 갔다,
그뒤 블라디미르 마야코브스키(Vladimir Mayakovsky, 러시아 작가)는 Llia Zdanevich에게서 피로스마니의 그림을 몇 점 샀고 그 중에 “아스란의 언덕의 밤”을 처남인 프랑스 시인이자 작가인 루이스 아라곤 (Louis Aragon)에게 선물했다.
이런 이유로 “아스란 언덕의 밤” 그림이 프랑스 파리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지아와 러시아에서는 2003년 소더비에 나오기 전에는 “아스란 언덕의 밤”은 사라진줄 알고 있었다.
피로스마니의 작품 “아스란의 언덕의 밤“은 2003년 공식적으로 그의 작품 중 최초 판매 되었다.
이 그림은 Ilia Zdanevich가 구입하기 전에는 두까니(선술집, 호프집, 펍)의 주인 “바야제”의 그림이었고 두까니 벽에 장식되어 있었던 작품이다.
“아스란 언덕의 밤” 두 번째 경매는 2015년 영국의 런던 의 Christie 경매 사이트에서 공지 했으며 MacDougall Fine Art Auction에서 약 1,700,000 USD에 경매 되었다.
피를 팔아 술을 마시며 결국 영양 실조와 간 질환 그리고 유행성 독감으로 사망한 피로스마니, 그가 술 한잔으로 그려준 그림, 한끼 빵으로 그려준 그림은 지금 수 백만불이 되었다.
피로스마니의 고향인 시그나기(미르자니는 시그나기에 속한 지역) 는 피로스마니를 기념하기 위해 “사랑의 도시”라고 부르며 시그나기 곳곳에 피로스마니의 그림을 동상화 해서 설치 해 두었다.
현재 시그나기는 결혼식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365일 24시간 결혼을 할수 있도록 결혼 등록소에서 싸인식(결혼식)을 할수 있으며 원하면 조지아 정교회 신부가 주례를 해준다.
시그나기는 피로스마니로 인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등 구 소련 국가 연인들이 결혼식을 하러 오는 명소가 되었다.
처음 피로스마니의 이야기를 들은 기자는 조지아 사람들에게 농담으로 “전 재산을 팔아서 꽃을 살게 아니라 돈을 줬으면 결혼해서 함께 오래 살지 않았겠냐?”고 이야기 했다. 그러자 현지인들의 반응은 “어떻게 돈으로 사랑을 살수 있는냐? 피로스마니는 진정한 로멘티스트였다 그리고 사랑은 순수한 것이라 돈으로 살수 없다”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해준다.
조지아 사람들은 여자에게 꽃을 바치지 않는 남자는 진정한 남자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조지아 사람들은 지금도 피로스마니는 우리 가슴에 살아 늘 감동을 준다고 이야기 한다."
다음 영상들은 피로스마니 그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으로 피로스마니의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는걸 볼수 있다.
노래 “백만 송이 장미” 에 대한 라트비아, 러시아, 한국노래 비교는 다음시간에 만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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