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코리아=서울) 최신 기자 = 매년 8월이면 필리핀은 필리핀의 초대 영연방 대통령이자 "아마 응 위캉 팜반사(Ama ng Wikang Pambansa(국어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뉴엘 루이스 퀘존의 삶과 업적을 기념한다.
그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꿈을 꾸도록 격려했다.
1878년 8월 19일, 지금은 오로라(Aurora)로 불리는 타야바스(Tayabas)의 조용한 해안 도시 발레르(Baler)에서 태어난 퀘존은 당시 식민지 통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의 애국심에 불을 지핀 계기는 스페인에 대한 필리핀의 혁명에 의해 형성되었다.
*오로라는 태평양에 면한 긴 해안선을 자랑하는 서퍼들의 천국으로, 영화 '지옥의 묵시록' 덕분에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미군 병사들이 서핑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으며, 제작진은 지역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서핑보드를 남겨 둔것이 1997년 9월부터 전세계 서퍼들이 매년 몰리는 '오로라 서핑컵'의 시작이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초등학교 교사였으며, 그에게 교육을 통해 국민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조국에 대한 강한 사랑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가 8살이었을 때 콜레라로 어머니를 잃었고,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 군대와 전쟁중 전사했다.
퀘존은 고아가 되었지만, 미래를 위해 산토 토마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훗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학교를 다니며 꾸준하게 일을 했다.
퀘존은 평범한 신분에서 성년기를 시작했지만, 그는 결국엔 정치가로 성장하여 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더 큰 자치권을 얻어내기 위해 싸웠다.
1934년 그는 미국 주재 상주위원으로 타이딩스-맥더피 법*, 즉 필리핀 독립법을 위해 투쟁했는데, 이 법은 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필리핀 독립법(공식적으로는 Philippine Independence Act)은 일명 타이딩스-맥더피 법(Tydings–McDuffie Act)으로 불리기도 하며, 1934년 3월 24일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이다.
『법률의 내용은 10년 뒤인 7월 4일에 필리핀을 독립시킨다는 것이었다. 1935년 11월에 독립 준비 정부(필리핀 커먼 웰스)가 발족하였고, 마누엘 퀘존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고, 1942년에 마닐라를 점령당하고, 퀘존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듬해 1943년에 일본이 대동아 회의에서 괴뢰 정권 '필리핀 제2 공화화국'을 수립하고 10월 14일에 독립을 선언, 그 독립을 국가가 승인해 아시아 해방을 선언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필리핀 국민은 격렬한 저항을 하였다.
이후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과 함께 항일 전쟁을 계속해 1945년에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실제로 필리핀의 독립이 실현된 것은 10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필리핀 연방이 형성되었고, 1946년 7월 4일에 완전한 독립을 이룬다.
퀘존은 한때 "나의 정당에 대한 충성심은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시작되는 곳에서 끝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그의 정치적 여정에 지침이 되었고 1935년에 퀘존은 필리핀 연방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재임 중에 필리핀어를 국어로 선포하고, 토지 개혁과 소작농의 권리를 옹호하고, 공교육을 확대했으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휘하의 필리핀군을 창설하여 국가 방위를 강화했다.
한편, 퀘존의 따뜻한 마음은 1930년대 후반에 널리 알려졌다.
나치 박해를 피해 도망치는 유대인 난민들에게 세계가 모두 등을 돌렸을 때, 그는필리핀의 문을 열어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
당시에는 인기 있는 정책은 아니었지만, 퀘존에게는 정치적 인기보다는 인간미가 우선이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열렬한 민족주의를 종종 그의 동맹국들조차 놀라게 하곤 했는데, 특히 잠재적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자치에 대한 그의 의지를 강하게 반복적으로 강조했을 때 더욱 그랬다.
퀘존은 "저는 미국인이 천국처럼 운영하는 정부보다는 필리핀인이 지옥처럼 운영하는 정부를 선호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름을 딴 도시
1939년, 퀘존은 현대적이고 독립적인 필리핀을 상징하는 새로운 수도를 구상했고, 이 꿈이 지금의 퀘존 시가 되었다.
QC는 마닐라의 교통 체증을 완화하고 정부 청사 역할을 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오늘날 이 건물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퀘존에게 필리핀인들이 바치는 살아있는 찬사로 남아 있다.
그의 유해가 우뚝 솟은 영묘 아래에 안치되어 있는 퀘존 기념 공원과 도시 내 퀘존 유산관 등의 랜드마크는 그의 업적을 보존 하고 있다.
한편, 그의 고향 발레르에서는 퀘존 공원과 발레르 박물관이 그의 뿌리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국가적 위업을 이룬 오로라 지역 소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매년 8월 19일에 기념하는 퀘존 데이는 공휴일일 뿐만 아니라 필리핀 국민들이 그가 구현한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1944년 망명 생활 중 사망한 지 81년이 지난 지금도 퀘존의 확고하고 열정적이며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여전히 울려 퍼지며 모든 필리핀인에게 그의 삶과 이상을 기념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8월 한 달은 '부완 응 위카(Buwan ng Wika)' 또는 '국어의 달'로 기념되는데, 이는 퀘존이 통일된 국어를 위해 노력한 것을 기리는 달이며, 그가 사망 후에도 그의 기억이 국민들 사이에 남아 있으며, 그의 기억이 국민들이 사용하는 언어, 그들이 사는 도시, 그리고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독립과 얽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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