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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기행 ⑧] 시인 백석(白石)이 양을 치던 마을은 그 어디쯤일까 2

  • 장윤정 특파원 weeklykoreanz@newskorea.ne.kr
  • 입력 2021.12.23 23:28
  • 수정 2023.01.2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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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뉴스코리아) 장윤정 특파원 = (편집자주: 뉴질랜드 교민 제임스 안(네이쳐코리아 대표)은 2019년 9월 10일~17일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다녀왔다. 안 대표는 뉴질랜드 국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신분이기에  한국에서 사진작가 겸 트레킹 전문가로 활동하는 로저 셰퍼드 등 7명과 함께 했다. 이 기행문은 2주마다 총 8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

 

 

■ 베개봉 전망대
자작나무와 단풍나무가 뒤섞인 베개봉 능선에는 풍력발전기들이 서 있었다. 현대식 전망대에서는 시야가 확 트였다. 오른편으로 산봉우리와 산들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었고, 산 아래 오목한 분지에 아름다운 도시가 들어서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

시가지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정돈된 도로와 다리가 건물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언덕배기에 붉은 기와를 얹은 하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소라색 지붕이 많은 중심부에는 군데군데 십여 층 남짓한 건물들이 툭 불거져 있었다. 붉은 지붕은 주택인 듯했고, 소라색 지붕과 건물은 병원이나 관공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건물들 사이로 뻗은 도로들은 승용차와 트럭들이 오갔다. 타원형 스타디움과 반원형 지붕을 얹은 체육관, 바닥이 파란 테니스장도 보였다.

깨끗한 주택단지, 현대식 체육관과 운동장, 규모가 있어 보이는 학교, 정연한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들이 하나로 어울려 도시를 조성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시가지를 둘러싼 아득한 산줄기 너머 어딘가에 시인(詩人) 백석(白石)이 양(羊)을 키우고 별을 헤아리며 여생을 보낸 마을이 있을 것 같았고, 홍범도(洪範圖)부대가 휴식을 취하고 전의(戰意)를 가다듬던 숙영지가 있을 것 같았다.

 

 

■ 삼지연(三池淵)
삼지연은 백두고원 중턱의 원시림에 잠겨 있는 세 개의 자연호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산마루에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커다란 산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는 약 백여 리라고 하는데 마치 백두산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맑고 잔잔한 호수에 백두산의 그림자가 비쳤다. 바람이 만든 물결에 산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높은 산의 그림자와 울창한 침엽수림이 비치는 맑은 호수의 풍경.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사색에 빠지게 하는 풍경이었다. 산과 호수의 조화는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호수의 한쪽은 혁명기념공원과 맞붙어 있었다. 공원은 엄청나게 큰 규모였고, 사람들이 많았다. 꼭대기에 횃불을 밝힌 석조 혁명기념비와 커다란 금빛 동상이 나란히 서 있었다.

넓은 바닥은 일정한 크기의 석재(石材)로 마감되었고, 경치가 좋은 곳곳에 당시의 모습으로 조성된 항일유격대의 기념물들이 서 있었다.

비가 온 후여서 난간 아래까지 맑은 물이 찰랑찰랑 닿아 있었다. 강변에 줄지어 있는 키가 큰 나무들 위로 새 떼들이 날아갔다.

백두산을 올려다보자 그동안 걸었던 길들이 눈앞인 듯 떠올랐다. 백두산 정상으로 올라갈 때 또 백두고원의 울창한 침엽수림의 좁고 험한 길을 걸을 때, 나는 그 길에 끝이 없는 줄 알았다.

아무리 걸어도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길이었고, 뒤를 돌아보아도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줄 알고 걸어왔는데 나는 처음 떠난 곳에 서 있었다. 길이란, 끝이 없지도 않은 그리고 돌아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 베개봉 호텔
베개봉 호텔로 돌아왔다. 정상을 향해 떠난 지 닷새 만이었다. 개선장군처럼 로비에 들어서는 지저분하고 꼬질꼬질한 사람들을 직원들은 박수로 맞았다. 각자의 방에서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안락한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였을 때 전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멋있고 잘생긴 사람들인지 미처 몰랐다.

일행 모두와 안내원들은 넓은 원탁에 둘러앉았다. 맛있는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도토리 소주도 주문했다. 모두 마음껏 먹었고, 마음껏 회포를 풀었다. 화제는 백두산의 웅장함과 신비로운 천지, 그리고 항일유격대의 활동으로 모였다. 삼지연의 아름다움도 빠지지 않았다.

똑같이 텐트에서 잠자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웃고 함께 견뎠던 동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배경은 다른데 감회는 비슷했다. 모두는 한결같이 어느 트레킹보다 즐거웠고 어느 여행보다 뜻깊었다고 말했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여러 사람에게 자랑할 것이며 널리 알리겠다고도 말했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배탈이 난 사람이 없었다. 밤이 되면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에서 야영을 하였으면서도 누구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고 험한 산길을 헤쳐 걸었으면서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낙오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동료가 되어준 것을 고마워했고, 다 함께 건배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가슴으로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약속했다. 밤늦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두산 아래에서 마지막 밤이었고, 내일은 평양으로 가는 날이었다.

기행문을 쓰기 전, 나는 내가 본 백두산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말로도 글로도 내가 본 것들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 표현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눈으로 본 것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이 창피스러웠다.

그렇다고 화려하게 포장을 하거나 장황하게 꾸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를 나름대로 열심히 쓰려고 했다. <끝>

제임스 안(네이쳐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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