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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못다한 출사표에 대한, 삶의 주장

제갈량을 통해 바라보는 스스로의 증명투쟁을 생각하며

  • 정회훈 시민 기자 yohan@newskorea.ne.kr
  • 입력 2022.05.28 13:34
  • 수정 2023.06.2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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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코리아) 정회훈 기자 = 와룡, 제갈량은 생전 주군의 한을 풀기 위해 그리고 함께 꾸었던 ‘한’의 통일을 위한 5번의 북벌을 감행한다. 이때, 유비가 이릉전투를 패하고 국력이 크게 쇠한 뒤 처음으로 내정을 안정시키고 북벌을 나서며 유선에게 바친 글이 그 유명한 ‘출사표’다.


삼국지 연의에 따라 생각해보면, 이릉전투에서 죽은 촉의 군사수만 대충 60만으로 추산한다.

돌아온 패잔병이 7,000여명 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국가의 기반 자체를 통째로 말아먹고 그 군주까지 병 걸려서 죽은 꼴이다. 그렇게 대장군으로 군림하던 관우와 장비가 죽었고 나라의 근본인 장정들 60만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날려 먹은 군량부터 생산가능인구도 박살이 났다고 표현할만큼 처참했고, 군자금으로 탕진한 돈만 한 두 푼이 아니다.

촉은 무너질 만큼 무너진 상태였지만, 제갈량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북벌의 꿈에 도전한다.

그의 출사표에는 그가 감내해왔을, 그리고 자신의 부재 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모든 걱정들을 담고있고 해당 북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그의 자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후주는 승상인 제갈량의 북벌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것이 선제의 대의를 잇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북벌은 믿었던 인물의 실패, 의외의 인물의 등장으로 인한 혼란, 오직 혼자만의 리더십으로 이끌어오며 생긴 문제점들이 혼재했다. 그렇게 믿고 아끼는 사람들이 사지에서 찢어졌지만, 부서지지 않는 정신으로, 실패해도 계속해서 북벌에 도전했다.

그렇게 5번 째 북벌을 시도하던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별이 되어 떠났다.

제갈량의 북벌은 낭만이다. 현실적으로 형주마저 잃고 크게 타격을 입은 국력을 가지고 중원을 지배하고 이북을 점유하고 있는 위에게 도전한 사실 자체가 넌센스다. 가만히 있으면 질 수 밖에 없다라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그 고민에 잡아 먹힌 것뿐이다.

그것이 제갈량의 삶 이었을 것이다. 천하삼분지계를 내세워 이룬 3세력의 병립, 형주까지 끌어안고 지형적인 이점마저 가진 촉의 발전, 오와의 관계를 통한 위 견제. 그의 플랜은 빠짐없이 모두 성공하며 그의 군주를 별 볼일 없는 동네아저씨에서 당당한 세력의 황제로 만들어 낸 것.

그렇게 탄탄대로를 걷던 중 주변인들의 트롤링으로 인한 세력의 존망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끊임없이 증명하며 살아왔다. 조용한 동네 선비에 지나지 않던 스스로를 알아보고 중하게 쓴 선제에 대한 충성심도 있었겠지만, 스스로의 천재성을 가감없이 발휘하며 대륙 최고의 지략가이자 군사임을 모두가 인정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인물리스크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자신이 일구어 놓은 번영을 송두리째 빼앗길 위기에 빠지며 초조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결정했을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끝까지 증명해내기 위해서 투쟁을 해내겠다고 말이다. 그것이 그의 ‘삶’을 주장하는 방식이었다.


전쟁의 성패를 떠나서 5번의 북벌에서 보여주는 그의 천재성은 여전했다. 대륙 최고의 모사이자 제갈량의 라이벌로 모사되는 사마의마저도 공명을 상대로 무조건적인 수비만을 고수하며 제갈량에게 맞수를 두는 일을 삼갔다. 간혹 격장지계에 넘어가는 소설적인 묘사도 있지만, 사마의는 죽은 공명마저도 두려워했을 만큼 제갈량의 맞수가 되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나 제갈량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최선의 수를 두며 전쟁을 지속했지만 뒤집어낼 수 있는 국력 차이가 아니었다. 일정 수준까지 돌파해내더라도 결국엔 패배 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을 이어나간 것 뿐이었다. 내심, 제갈량도 알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이것은 이기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스스로의 투쟁을 현실화시킨 것 뿐임을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위해서 생명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신경쓰는 위인은 아니었다.

그의 투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거대한 투쟁이, 무엇을 남겼는가?

제갈량은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의 삶에 충실했음에 만족했을까?

제갈량은 실패자일까?

 

필자는  스스로의 삶을 투쟁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서 나름의 투쟁을 삶 곳 곳에서 분전하고 있다.

나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삶을 얻기 위해서, 내가 바꾸고 싶은 것들을 바꾸기 위해서 나아간다.

제갈량의 이야기를 보면서 묘하게 씁쓸함을 느낀다. 그런 천재도 분투하며 살고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쓰라리기도 하다.

재능과 노력으로도 이룰 수 없는 꿈이 있다면, 우린 그것을 좇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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