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코리아=아산) 문소연 기자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에 자리한 맹씨행단이 깊어가는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조선 초기 명재상 고불 맹사성(1360~1438)과 그의 부친 맹희도가 기거하며 후학을 길렀던 유서 깊은 공간으로, 이곳을 상징하는 두 그루의 거대한 은행나무는 65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늘을 증언한다.
■ 650년을 버텨온 ‘쌍행수’의 황금빛 가을
맹씨행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 것은 높이 20m가 넘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다.
‘쌍행수’라 불리는 이 나무는 맹사성이 직접 심었다는 전승이 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杏壇)’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에서, 맹사성 역시 후학을 가르쳤다고 기록은 전한다.
지난여름 집중호우로 한 그루가 크게 훼손되며 단풍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수백 년 풍상을 견뎌온 거목은 올해도 변함없이 황금빛 잎을 틔웠다.
1987년 대수술을 이겨 내 다시 뿌리내린 힘도 있다.
오래된 나무 앞에 서면 시간의 두께가 고스란히 몸으로 전해진다.
■ 현존 최고(最古) 민가의 소박한 품격
쌍행수 곁에는 고려 말에 지어진 고택이 자리한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민가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평가되며, 여말선초 민가의 구조와 미감을 오늘까지 온전히 전한다.
재상 집답지 않게 화려함이 없는 구조는 오히려 맹사성이 보여준 청백리의 삶을 닮았다.
낮은 처마, 절제된 마루, 군더더기 없는 선들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고택 뒤편에는 맹사성과 조부 맹유, 부친 맹희도의 위패를 봉안한 세덕사가 이어지고, 담장 밖으로 난 돌길을 따라 걸으면 세종 시기 삼정승이었던 황희·맹사성·권진이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를 함께 심었다고 전하는 구괴정에 닿는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만 해도 조선 전기의 숨결이 겹겹이 겹쳐진다.
■ 단풍 든 배방산과 함께하는 가을의 정취
맹씨행단의 가을 풍경은 고택에서 마주 보이는 배방산의 단풍으로 절정을 이룬다.
고즈넉한 한옥 처마 아래서 노란 은행잎과 붉은 산빛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찰나지만 오래 기억되는 계절의 장면이다.
■ 고불맹사성기념관 특별전 ‘신창맹씨 온양댁’
고택 맞은편 고불맹사성기념관에서는 맹사성의 일대기와 유물들을 상설 전시하며 그의 삶과 사상을 되새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평생 가마 대신 검은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 부르기를 즐겼다는 맹사성의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백옥 횡피리는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기념관에서는 오는 11월 30일까지 ‘신창맹씨 온양댁’ 특별전이 열린다.
2025~2026 아산 방문의 해를 맞아 대전시립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을 대여해 선보이는 자리로, 2011년 대전 유성구 안정 나씨 종중 묘 이장에서 확인된 부장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명정에 적힌 ‘신창맹씨’ 기록을 토대로, 조선 초기 군관 나신걸(1461~1524)의 부인이자 맹사성의 증손녀인 인물의 묘로 밝혀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훈민정음 반포 40여 년 뒤 영안도에서 근무 중이던 나신걸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부인에게 보낸 것으로, 조선 전기 한글이 일상 언어로 빠르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다.
해당 편지는 202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조선 초기 여성의 복식과 생활상을 담은 홑저고리, 솜치마, 무명 바지, 쪽빛 장의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전시돼 500년 전 한 여성의 일상과 감성을 생생히 전한다.
■ 가을, 역사를 걷는 시간이 되다
이맘때 맹씨행단을 찾는 이들은 단풍이 물든 가을 풍경과 더불어 조선 전기의 문화와 삶을 마주한다.
오래된 은행나무와 고택, 그리고 특별전이 더해진 올해의 맹씨행단은 시간의 결을 따라 걷는 기행의 장이 된다.
가을의 깊이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맹씨행단의 황금빛 숲 아래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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