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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호 특파원의 사진으로 떠나는 코카서스 여행-13

백만 송이 장미 와 조지아 국민 화가 피로스마니 2

  • 박철호 특파원 caucasus@newskorea.ne.kr
  • 입력 2023.08.02 09:00
  • 수정 2024.12.2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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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자아니 피로스마니 박물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미르자아니 피로스마니 박물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편집자주 박철호 특파원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여행정보, 유학정보, 현지 소식등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코카서스 여행을 박철호 특파원과 사진으로 함께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뉴스코리아=트빌리시) 박철호 특파원 = 로스마니(Pirosmani)가 생을 마감한 작은 골방은 트빌리시의 기차역 주변에 작은 박물관이 되었다.

 

미르자아니 박물관에 피로스마니가 이용했던 테이블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미르자아니 박물관에 피로스마니가 이용했던 테이블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미르자아니 피로스마니 박물관 내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미르자아니 피로스마니 박물관 내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미르자이니 박물관에 피로스마니가 쉬었다고 하는 나무 (뜨거운 여름에도 정말 시원했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미르자이니 박물관에 피로스마니가 쉬었다고 하는 나무 (뜨거운 여름에도 정말 시원했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사망했던 트빌리시 기차역 주변 주택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사망했던 트빌리시 기차역 주변 주택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그의 고향 “사랑의 마을”이라고 불리우는 “시그나기(Sighnaghi)” 주변인 “미르자아니(Mirzaani)”에 그가 돈을 벌어 건축한 그의 집이 보존되어 있으며 조지아 정부는 그 주변에 2014년 미술관을 만들었다

 

피로스마니의 화풍

피로스마니(Pirosmani)의 그림은 그가 살아온 어려운 환경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 하였다.

그는 가난한 고아 였으며, 상인이었고, 노동자였다, 또한 어린 시절 부유층(귀족) 하인으로 있었던 때에 귀족들의 다양한 수프라에 참여하는 부유층(귀족)들의 모습 그리고 서민들의 생활이 그의 그림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정육점 '피로스마니"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정육점 '피로스마니"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상점"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상점"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Pirosmani)는 자연과 시골 생활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도시 경관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는 특히 많은 동물 그림을 그렸는데, 당시에 그는 조지아내에서 유일한 동물 보호주의자였다.

 

피로스마니가 유일하게 그렸던 도시 풍광 조지아의 서해 흑해의 진주 '바투미 항구"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유일하게 그렸던 도시 풍광 조지아의 서해 흑해의 진주 '바투미 항구"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그린 다양한 동물 그림"젖 소"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그린 다양한 동물 그림"젖 소"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의 가장 대표작에 하나인 ' 사슴'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의 가장 대표작에 하나인 ' 사슴'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 박물관 정원에 있는 그가 그렸던 사슴과 피로스마니 동상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 박물관 정원에 있는 그가 그렸던 사슴과 피로스마니 동상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의 그림의 그의 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양"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의 그림의 그의 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양"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동물 그림 대표작에 하나인 "기린'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동물 그림 대표작에 하나인 "기린'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백곰과 새끼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백곰과 새끼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현재 피로스마니(Pirosmani)는 12세기 조지아의 세익스피어라 불리우는 Shota Rustaveli, 12세기 조지아 황금기를 만든 Queen Tamar, 17세기 조지아 전쟁 영웅 이자 탁월한 정치가 Giorgi Saakadze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조지아의 영웅 반열에 올라 있으며 일반인들이 사랑하는 국민 화가가 되었다.

그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1 라리(GEL 조지아 화폐 단위) 인물이며 지금은 5 라리에 피로스마니 그림이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조지아 지폐 1라리(한화 약 300원) 피로스마니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조지아 지폐 1라리(한화 약 300원) 피로스마니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조지아 화폐 1라리 (한화 약 300원) 전면에 피로스마니와 후편에 대표작 "사슴"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조지아 화폐 1라리 (한화 약 300원) 전면에 피로스마니와 후편에 대표작 "사슴"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최근 발행된 신권 5라리(약 1,500원)에 피로스마니의 대표작 "어부"외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최근 발행된 신권 5라리(약 1,500원)에 피로스마니의 대표작 "어부"외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돈이 없어 재료를 구할수 없었던 

피로스마니는 버려진 천과 남은 물감으로

 작품을 그렸다

피로스마니(Pirosmani)의 그림은 주로 Oil cloth(기름 발라진 천) 에 그렸다.

캔버스를 구하기 힘든 그는, 주변에 버려진 기름먹은 천 소재 위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의 그림은 검정색이며 어둡다.

피로스마니의 그림은 어떤 예술적 기교나 다른 사람 그림에 대한 모방이 없다.

물감을 구하기 힘들었던 그의 그림 대부분이 단색 이다.

그러나 그림안에 있는 피로스마니에 예리한 구성과 배치등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그의 그림은 인물의 배치는 주로 정면이며 얼굴은 특정 분위를 부곽하여 나타내지 않았다.

 

사랑의 도시라고 불 리우는 시그나기에 있는 박물관 2층에는 피로스마니 그림이 전시 되어 있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사랑의 도시라고 불 리우는 시그나기에 있는 박물관 2층에는 피로스마니 그림이 전시 되어 있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시그나기 박물관 내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시그나기 박물관 내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시그나기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는 피로스마니의 그림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시그나기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는 피로스마니의 그림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시그나기 박물관 1층에는 조지아 전통 의상들과 역사과 전시 되고 있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시그나기 박물관 1층에는 조지아 전통 의상들과 역사과 전시 되고 있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계란 모양에 조지아 전통 와인 저장 항아리 '크베부리"와 수프라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계란 모양에 조지아 전통 와인 저장 항아리 '크베부리"와 수프라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맥주 마시는 여인 ("마가리타' ) 캔버스가 구할수 없었던 피로스마니의 그림의 배경은 대부분 검정이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맥주 마시는 여인 ("마가리타' ) 캔버스가 구할수 없었던 피로스마니의 그림의 배경은 대부분 검정이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수프라(만찬) 하는 사람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수프라(만찬) 하는 사람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마가리타(Marguerite de Sèvres 1885 년-1968 년, 태어난 해와 사망년도는 정확하지 않다.)는 프랑스 여배우, 가수 및 댄서 였다.

아마도 마가리타 (Margarita de Sevres)는 1885년에 태어 났다고 추정한다.

피로스마니 (Niko Pirosmani )와의 만남 당시 그녀는 약 20대 였기 때문이다.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마가리타가 트빌리시를 방문한 년도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녀가 트빌리시 공연을 위해 방문한 해는 1905년 또는 1907년으로 보고 있으며 트빌리시 방문 전에는 프랑스 벨뷰 미니어처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녀를 트빌리시에서 수행 했던 사람에 의하면 마가리타는 노래와 춤에 뛰어났으며, 식당, 두까니(dukhans), 카페 등에서 공연하는 동안 늘 관객이 많았으며 인기가 높았고 열성 팬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팬 중에는 늘 식당 한자리에 혼자 식사하며 마가리타를 바라보는 사람 “피로스마니”가 있었다.

“마가티타” 역시 피로스마니가 자기의 열성 팬중 한명이며 자신을 좋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마가리타가 공연했다고 하는 식당 사진

당시 피로스마니는 화가에 미르자아니에서 낙농업과 양봉을 했으며 그가 직접 만든 유제품과 꿀을 트빌리시에서 판매하는 가게의 주인이었고 주점인 두까니(주점)에 동업자이기도 했다.

또한 트빌리시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과 두까니【Dukhani,조지아 단어 이며, 주점, 호프집(HOF),펍(PUB)】에는 피로스마니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당시 트빌리시를 방문하는 유럽 예술인들이 두까니나 식당등에서 피로스마니의 그림을 보며 여흥을 즐겼다.

 

"마가리타'가 공연 했다고 하는 트빌리시의 레스토랑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마가리타'가 공연 했다고 하는 트빌리시의 레스토랑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마가리타와 백만 송이 장미"

 

마가리타는 어느날 아침 호텔 창문을 연 순간 깜작 놀라고 말았다.

 

장미, 라일락, 아카시아, 모란, 백합, 야생 양귀비등... 수 많은 이름 모를 야생화들....

 

"마가리타"는 트빌리시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과 사랑을 받고 있었던 인기 좋은 배우이자, 댄서이며 가수 였고 많은 사람에게 갈채를 받던 스타였다.

 

"마가리타"는 자신을 좋아하는 화가이며 부자인 피로스마니가 꽃을 보냈다고 생각 했다.

그녀는 꽃을 사기 위해 피로스마니 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마가리타”는 꽃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깨닫고 밖으로 나가서 피로스마니(Pirosmani)에게 진한 입맞춤을 했다.

그러나 40여일간의 사랑과 트빌리시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고 그렇게 그녀는 미련 없이 프랑스로 돌아 가 버린다.

피로스마니는 마가리타와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1909년에 "여배우 마가리타"라는 그림을 그렸다.

 

꽃을 든 "여 배우 마가리타 "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꽃을 든 "여 배우 마가리타 "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그는 죽는 순간 까지도 침상 앞에서 “마가리타”와 같이 있었다.

 

피로스마니가 생을 마감한 그의 작은 방과 "마가리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생을 마감한 그의 작은 방과 "마가리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의 트빌리시 기차역 주변 작은 방과 작업실 그리고 마가리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의 트빌리시 기차역 주변 작은 방과 작업실 그리고 마가리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생을 마감한 계단밑  작은 침대 그 앞에는 마가리타의 그림이 있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생을 마감한 계단밑  작은 침대 그 앞에는 마가리타의 그림이 있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트빌리시 기차역 주변 피로스마니 박물관에 피로스마니 동상과 피로스마니 방에 놓여 있는 "마가리타" (2017년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촬영 당시)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트빌리시 기차역 주변 피로스마니 박물관에 피로스마니 동상과 피로스마니 방에 놓여 있는 "마가리타" (2017년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촬영 당시)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건축했던 집과 박물관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촬영시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가 건축했던 집과 박물관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촬영시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마가리타를 떠나 보낸 피로스마니의 슬픈 죽음!

 

사후 그가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시도 썼음을 알게 되었고 낡은 손수건 같은 천에 쓰여진 유언 같은 시가 발견 됐다 .

시 내용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까지도 마가리타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모두 용서 했다” 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로 돌아간 마가리타를 잊지 못한 피로스마니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자주 우체국을 찾았다고 하나 그의 편지가 프랑스로 전달되었는지 아는이는 아무도  없었다.

 

피로스마니의 골방은 지금은 피로스마니 박물관. 지금도 낡고 초라하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의 골방은 지금은 피로스마니 박물관. 지금도 낡고 초라하다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허룸한 피로스마니의 박물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허룸한 피로스마니의 박물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 박물관 현판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 박물관 현판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트빌리시 기차역 옆 피로스마니 박물관 내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트빌리시 기차역 옆 피로스마니 박물관 내부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피로스마니의 그림중 가장 최근 발견된 그림은 2011년 3월 되어서 미르자니 인근 Ozaani 마을에 오래된 와이너리 문에 붙어 있는 “상처 입은 군인” 이라는 작품이 우연히 발견 되었다.

이 “상처 입은 군인” 그림이 가장 최근에 발견된 피로스마니의 그림인것이 확인 되었고 지금 이 작품은 조지아 국립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다.

 

2011년 우연히 발견된 피로스마니의 그림 " 상처 입은 군인"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2011년 우연히 발견된 피로스마니의 그림 " 상처 입은 군인" @뉴스코리아 박철호 특파원

 

2017년 촬영하고 2018년 방송 되었던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사랑과 평화의 노래 조지아” 편 중 피로스마니 트빌리시 박물관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피로스마니 - 미르자아니 박물관"편

 

다음편은 1968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최 되었던 ‘피로스마니 전시회’와 전시회를 방문한 ‘마가리타’의 이야기와 “백만송이 장미” 노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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