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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론이 바로서야 세상이 아름다울수 있다.

  • 최신 기자 korea@newskorea.ne.kr
  • 입력 2022.03.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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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홈페이지 1위 '소년심판'
넷플릭스 홈페이지 1위 '소년심판'

(서울=뉴스코리아) 최신 기자 = 소년심판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만 13세 미만 촉법소년의 범죄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 사회 한켠의 아동범죄의 다양성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소년심판은 우리 사회에 어떤 메세지를 남겼는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아이가 철이 없어서, 우리 아이가 잘 몰라서, 우리 아이니까'로 무제한적 관용은 결국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때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못하게 만든다.

지금의 5060 세대들의 학창시절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 형, 누나들이 그렇게 어른스럽고 커보였다.

특히 군복을 입은 군인 아저씨들은 듬직하다 못해 믿음직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요즘의 고등학생들은 예전과 달리 어른스럽지도 듬직하지도 못하다.

군복입은 군인들 조차도...

그렇다고 그들의 나이와 기성세대들의 나이가 다르지 않음에도, 왜 이렇게 확연하게 차이가 날까?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청년세대들의 부모세대로부터 대물림 되어 전해진, 못먹고, 못입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내 자식들에게만큼은 대물림 하고 싶지 않은 부모세대의 넘치는 사랑이 만든 참상이기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의 아이들은 과거 세대와 달리 속된 말로 버릇들이 없어져버렸다.

어른들 앞에서 버젓히 담배를 피워무는것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지하철에서 어른의 뺨을 내려치고, 핸드폰으로 어른의 머리를 가격하며 내뱉는 거친 욕설과 폭언은 뉴스를 통해 심심찮게 접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왜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 하기만 했다.

먹고 살기 급급해서라는 변명만으로는 충분한 설득력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어른이 어른 다워야 하는 세상이 우선인 것은 기본이다.

문제는 그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 아이들도 어른답지 못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것인데도, 이 사회의 어디에서도 자중과 자조섞인 메세지가 나오지를 않는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에서는 온갖 비리와 몰염치가 다반사고,

기분좋고 아름다운 뉴스보다는 각종 흉악범죄 뉴스로 가득 하다.

정말로 이 세상은 이런 험한 일들만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 구석구석에는 지금도 훈훈한 미담들이 넘쳐 나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자극적이고 비판적인 뉴스만 내보내기 바쁘다.

모든것은 언론 탓이다.

언론이 제 노릇을 못하기에 예전같은 달콤한 세상이 아닌 살벌한 세상만 존재하게 비춰지는것이다.

언론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하며,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 두가지 기본만 지켜준다면 세상은 폭력적이지도 흉악스럽지도 않은 세상인것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지금 변해야 하는것은 청년들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이 먼저다.

꾸짓을줄 알아야 한다. 내 자식부터 엄하게 야단 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내 아이를 감히 누가 때리느냐고 학교로 낼름 쫒아가서 교사에게 손찌검을 하고 폭언을 퍼붓는 어른이 변해야 한다.

아이가 잘못했으면 야단 쳐야 하고 변화 시키려는 훈육이 함께 여야 한다.

그런데 삐딱한 관점의 언론들은 이런 헤드라인을 뽑아내기 바쁘다.

"초등생 제자 체벌한 교사 찾아간 부모가 교사 뺨때려"

제목만으로는 초등생 아이가 교사로 부터 죽지 않을만큼 두들겨 맞은것으로 오인하는 제목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모가 교사의 뺨을 때렸다는 자극적인 문구다.

기사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극적인 제목만으로 그 기사의 내용을 예측하기 십상이니까.

그렇게 내용보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흔히 말하는 낚시를 한다.

그래야 조회수가 나오니까, 그래야 광고비가 올라가니까. 경쟁적으로 서로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제목 뽑는데만 몰두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기사의 내용보다는 조회수에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현재 언론의 수익구조부터 달라져야 한다.

특정인에게 유리한 솔로몬의 판결문 같은 기사가 아닌, 냉철하고 올바른 관점에서 시작된 올바른 뉴스들은 천천히 세상을 정화할것이다, 그렇게 언론의 작은 변화는 아이들을 변화하게 만들수 있고, 청년들을 변하게 만들수 있고, 기성 세대를 변하게 만들어 갈수 있을것이다.

 

그래야 소년심판속 아동 범죄도 없어지는 날도 올것이다.

기준에서 시작해야 한다.

언론은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사명감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

고작 조회수에 연연하지 말고, 양질의 기사내용으로 승부수를 던질수 있는 올곧은 언론들이 많아 지는 날이 뉴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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