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뉴스코리아) 신승준 특파원 = 5월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미육군 홈페이지에 한인 미군 정보장교의 애틋한 사연이 소개돼 화제다.
사연의 주인공은 현재 주한미군 정보참모로 복무 중인 이준 중령이다.
이 중령은 자신의 인생 다음 목표인 ‘주한 미국 대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고 미국을 사랑한다. 두 나라는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줬고 내가 이곳에 온 것은 것은 굉장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대구에 있는 미 육군 19전투지원사령부에 소속된 이 중령은 다문화가정에서 어렵게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가족들과의 삶, 그리고 고향 대구와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해준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중령의 이같은 이야기는 미 육군 홈페이지와 소속 부대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동시에 소개됐다.
1973년 대구 미군 부대 앞. 당시 22세 여성이 어린 아이 두 명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와 부대의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헌병에게 건네며 아이들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고는 황급히 사라졌다.
바구니 속 아이들은 이 중령과 그의 누나였고, 이 둘을 데리고 온 여성은 이들의 친모였다.
아이들의 친모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한국 주둔 미군과 북한 출신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유색인종 다문화 가정 대한 편견이 극심하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때여서 한국에서 혼혈인으로 자라는 것은 힘든 상황이었다.
이 중령의 혼혈 어머니는 친부와 결별하게 되자 아이들만이라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주고자 이 같은 일을 감행한 것이었다.
한편 한국 복무 중 베트남에 파병을 다녀온 친부는 갑작스레 아이들을 넘겨 받자 당황해 아이들을 무작정 대구의 한 보육원으로 보내버렸다.
그러나 미군이 혼외로 얻은 어린 자녀를 보육원에 맡겼다는 소문은 친부가 소속된 부대의 중대장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자, 중대장은 친부를 불러 아이를 양육할 방법을 찾아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라고 명령한다. 만약 명령을 어길시에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를것이며 강제로라도 불명예 전역을 시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 학력이 전부였던 친부에게 군 이외의 선택지는 따로 없었기에, 결국 소속 부대 중대장과 선임 부사관이 보육원에서 남매를 데려왔고, 친부는 아이 돌보미를 고용해 보육료를 지급하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부양하게 된다.
이 중령은 당시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붙였던 그 상관(당시 대위)을 ‘나의 수호천사’라고 표현 했다. 그는 보육원이 아닌 일반 가정의 돌봄을 받았음에도, 그의 유년 시기는 대구의 암시장에서 불법 심부름을 하면서 대가로 캔디를 받는등 결코 순탄하지 않기도 했다.
그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이 중령에게 조금씩 의미있는 변화가 생겼다.
본국에서 복무하던 친부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 중령의 위탁 가족은 진짜 가족이 됐다.
이 중령과 누나를 돌봐주었던 아이 돌보미의 딸과 친부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이 중령에게 의붓엄마와 의붓형제자매도 생긴 것이다.
친부가 군 생활을 접으면서 그의 나이 열한살에 가족은 워싱턴주 타코마로 건너가면서 이 중령의 미국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 됐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버지의 이름(레이먼드 워맥 시니어)을 그대로 딴 레이먼드 워맥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또래들보다 4년 늦게 유치원 과정에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그의 학업은 쉽지 않았고 새로운 가족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다행히 중학교 시절 헌신적인 교사를 만난 덕에 학업에 자신감을 갖게 됐고, 고교 시절에는 풋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고교 유망주로 워싱턴주립대학에 진학, 소속팀 ‘WSU 쿠거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중령은 부친으로부터 서울에서부터 흥신소를 고용해 수소문한 끝에 한국인 엄마와 연락이 닿았다고 전해들었다.
그런데, 이 중령의 친모는 놀랍게도 대구가 아닌 타코마 인근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와 누이는 성인이 되어 20여년만에 친모와 재회했고, 그들의 첫 상봉 때 많이 울고 웃었으며, 지금은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낸다.
이 중령은 풋볼을 계속했더라면 어쩌면 하인스 워드와 함께 NFL을 호령하는 한국계 선수로 사랑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수호 천사’ 중대장을 롤모델로 삼고 군입대를 결심한 그는 학군사관(ROTC)에 들어가 1998년 소위로 임관했다.
미군 장교로 임관한 그는 2007년 경북 칠곡 왜관의 미군부대로 배치됐다.
한국생활을 하면서 몰라보게 변했지만, 언뜻 옛 모습도 남아있는 이태원과 대구를 찾았다. 그가 복무하고 있는 대구의 현 소속 부대는 공교롭게도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았던 그 중대장이 복무했던 바로 그 부대다.
그는 한국 복무 중 싱글맘과 보육원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사업에도 적극 참여 했다. 그와 동고동락한 누나도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 지금은 굴지의 미국계 금융사 한국지사에서 간부로 근무 중이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부대가 내 마지막 부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 중령은, 주한 미국 대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렸을 때 위탁가정과 시장통에서 익혔던 한국어를 정식으로 배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