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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노후생활] 비뚤어진 이타심(利他心), 바로 세우기

  • 신종국 전문기자 jongkuk-0311@newskorea.ne.kr
  • 입력 2025.02.24 20:34
  • 수정 2025.08.3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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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코리아=서울) 신종국 기자 = “이타(利他)”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이롭게 하다. 더하여 불교에서, 공덕과 이익을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타심은 남을 위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감능력의 원천인 착한 성격, 상냥함, 배려심 등과 매우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이타심이 충만한 사회는 언제나 삶의 풍요와 근원적 축복이 회복될 수 있다.

 

삽화 : 폐쇄주의  @작가 신종국
삽화 : 폐쇄주의  @작가 신종국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는 오히려 이타심의 한계와 경계가 빈곤해지는 중이다. 이타심의 방향성이 오염되었다.

우리 정치는 국익보다 사익으로, 세계 경제는 인류애 보다 자국 우선주의 장벽을 세우는 일에 앞다툰다.

우리는 위태롭고, 세계는 불확실성이 짙다.

자본주의 좌장격인 트럼프의 “ 도 우트 데스(Do ut des: 네가 줘야 나도 준다)” 일성에 변수에서 상수가 되어가는 관세 직격탄에 지구촌의 의리 또한 파산 직전인 까닭이다. 

이러한 이타심의 집단 이기적 방향성은 온갖 폐단과 해악을 동반한다.

변질된 이타심을 부추기고 ”진실“보다 자신들 입맛을 위해 선동하는 것들 중에 최고는 “뉴스” 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드 보통이 “현대 사회는 미디어 중독의 곤경에 처했다”는 인류에게 내민 냉철한 지적에 동의하는 이유다.

현대 사회는 뉴스의 시대라 불릴 만큼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매일 뉴스에 노출되어 무차별적 강매에 시달린다.

자극적이며, 거칠고, 극과 극으로 치닫는 뉴스는 본질을 호도하기 때문에 가짜는 재생산되고, 사회 혼란은 가중된다.

부정적 이타심을 유발하는 가짜 뉴스는 사회악인 동시에 인류악이 되었다.

“현명한 이타주의자” 에서 독일의 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은 이기심이 만연한 세상에서는 역설적으로 다정한 태도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 절실히 그리워지기 마련이라며,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만족하고 더 성공하며, 심지어 더 건강한 경우가 많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명한 이타적 환경은 단기적으로 조성되지도 오래 유지되지도 못한다. 이타심의 빈약한 이분법적 사고 탓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건부 이타주의자로 상황에 따라 이타심이 생성하기 때문이다. 선악의 구분은 그 다음 일이다.

분위기 조성에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되면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는 부정적 감정을 낳기 십상이다.

그냥 모 아니면 도다. 중간이 없다. 중용,  “그만하면 괜찮다”는 신중한 행동에 대해  현 시대 우리는 과단성의 결여나 비겁한 무관심으로 보는 듯하다. 

사람 인(人)은 두개의 크고 작은 막대가 서로 의지하며 서 있는 모양이다.

사람은 상호보완관계를 유지하여야 사는 존재이고, 시간의 파괴성에 저항하며 삶이 마무리 될 때까지 비스듬히 기대어 사는 게 운명이라는 증거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살든, 이타심으로 살든, 중간의 삶을 살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일성은 틀림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물론 이타심은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양면성도 존재한다.

이타심이 꼭 긍정의 결과만을 가져오지도, 밝음과 어둠은 따로 떨어져 발현되지도 않는다.

예수나 간디, 聖人들 처럼 동등하게 차별없이 공명정대하게 이타적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은 이상(理想)이다. 

이타심은 인간의 본성 중 일부이다.

절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한계와 경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비뚤어진 이타심이 양산되는 것은 자연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타심은 보통 가족, 친구, 끼리끼리 혹은 본인이 속한 공동체의 경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의 잘못을 비호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하려는 인지상정이 관례처럼 여기며 산다.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 따라 이타심이 이기심으로 바뀌는 한계는 인간 모두의 공통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핵심은 공동체의 크기에 따라 해악이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정치 팬덤이 그 선연한 증거다. 

비뚤어진 이타심은 이기심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 이기적인 사람은 최소한 자신에게 손해가는 짓은 절대하지 않지만, 이타심은 설령 자기에게 피해가 온다고 해도 끝까지 악행을 비호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라는 정당화의 단초가 되기에 더 두렵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소속 공동체의 주장을 무조건 신봉하는 편향은 불문율 이다. 진실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 

철학에서 말하는 실재(實在)는 “우리의 인식이나 경험과는 상관없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뚤어진 이타심은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음모론자를 양산하며 어떤 경우에도 항상 자신만 옳고, 절대 물러남이 없다.

오늘날 탄핵정국이 그렇다.

진실보다 믿고싶은 편향으로 무장한 집단의 거친 모습은 오만함 그자체로 완벽한 거짓이다.

국가의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이전투구의 현장은 실재없는 침소봉대로 아수라장이고, 진실은 없고 선동만 넘친다.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에서 보다 진실 쪽에 서려면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답은 명확하다.

국가의 존립을 흔드는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된 이타심의 횡포를 막는 방법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대다수 국민의 이타심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국난의 위기 때 마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애국심은 반만년 역사의 상징이다.

중용으로 무장하고, 빈약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실재의 존재만을 믿으며, 사소한 것부터 공감할 수 있도록 자만(自慢)을 유보 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과 가장 하찮게 보이는 소소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노력이 비뚤어진 이타심의 폭정에서 우리를 분명하게 지켜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만연한 비뚤어진 이타심을 바로잡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한계와 경계를 뛰어 넘는 올바른 이타심이 빠르게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신종국 기자는 충북 제천 태생으로 충주고, ROTC장교,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금융경제를 전공했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연수했다.

KB국민은행에서 행원으로 시작해 지점장, 본부 부장, 지역본부장을 역임했으며, 특히 부장 재임시 은퇴노후 전담부서인 골든라이프 부서를 지휘하며, 2016년 은퇴 전략 포럼에서 ‘금융기업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주제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현재 분당에서 은퇴 설계 연구소를 운영하며, 금융 전문가, 은퇴 전략가로 강연과 솔루션 제공을 통하여 수 많은 액티브 시니어들의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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