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코리아=타슈켄트) 최신 특파원 = 지난회에 이어 박광남씨 탈북 이야기 두번째를 시작 합니다.
편집자 주
본지는 정치적, 종교적 중도 성향의 정론지로서, 자랑스러운 한민족, 한국인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한국인(탈북민, 고려인, 조선족, 한국계 동포 포함)들의 삶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듣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박광남씨의 보도가 결정되기까지 많은 고심이 필요했습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북한 대사관은 없으나, 북한 사람들도 자유롭게 출입국이 되는 국가이기에 혹여 박 씨 와의 인터뷰가 보도됨으로서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 특히 박 씨가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어 하시는 따님의 안녕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어 여러분야의 전문가들과 많은 논의 끝에 박 씨의 인터뷰 내용중 유추될수 있는 개인 정보를 제외하고 보도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북한에서 박 씨의 따님이 아빠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잘 지내고 있다는것을 직,간접적으로 전달 되는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던 박광남 씨 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결정 했으며, 뉴스코리아는 현재 전세계는 물론 북한에서도 접속 트래픽이 발생 하고 있는것을 확인 했기에 북에 두고 온 박광남씨의 가족들이 이렇게라도 아빠의 소식을 접할수 있기를 간절한 염원을 담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 북한의 현 정권이 무너질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할 용의가 있어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게 평화 통일이겠죠. 그렇지만 지금 김정은 독재하에서는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기 힘들어요.
제가 좀 더 열심히 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반드시 하고 싶어요."
-박광남씨 인터뷰 내용중 발췌-
러시아에서 탈북을 결심하시기 전까지는 남한(대한민국)의 사정을 전혀 모르신 거죠. 정확하게는?
전혀 몰랐죠.
대한민국이 어떨것이다. 이런 것도 전혀 모르시는 상태에서 탈북을 결심 하셨네요?
라디오는 가끔씩 들었어요. 사실 그거(한국방송) 듣는 것 자체도 우리(북한)는 범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거의 안들었죠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고 변변한 옷가지들도 없으셨을 텐데.
산 사람은 죽으라는 법이 없어요. (살고자 하는)의지만 있다면, 기자님 있잖아요. 가장 (삶의 욕구가) 질긴 게 인간이에요. 사람이 그래요, 살고자 하는것에 대한 욕구가 있고, 사실 여기서 미래에 대한 욕구까지는 얘기를 안해도 말입니다...
어찌되었건간에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셨기 때문에 결단(탈북)을 하신 거군요, 그럼 러시아에서 한국까지는 어떻게 오셨어요.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 정말 팬티 하나만 달랑 입고서 탈북을 하신건데,
여기를 벗어나야 되겠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이라는게 사실 특별한 게 없어요, 내가 도둑질 안하고 강도질 안 하려면 땅을 파서라도 내가 먹을 밥 한그릇은 해결해야 돼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루씩 일 봐주고 한 끼 얻어 먹듯이 하면서 버텨 버텨 오신 건가요?
그렇죠, 물론 중간에는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지만 내가 북한(보위부)에게 쫓기는 몸인데 러시아에서도 어떤 잘못을 해가지고 쫓기게 된다면 저는 더 힘들어져요. 왜냐하면 저는 이미 쫓기는 몸이에요. 북한에도 쫓기고 러시아(체류)에서도 합법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여권법이나 모든 것들이 이미 모두 위반이 됐기 때문에 저는 이미 쫓기는 몸이에요. 그래서 제가 범죄를 저지르면 저지를수록 저는 여기(러시아)서 은둔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거에요, 생존 수명은 짧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걸 (생존기간)늘리기 위해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지내다 시피 지냈던거죠.
러시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목표로 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네 있었죠, 왜냐하면 제가 러시아에서 고려인 여자를 한명 만났어요.
제가 북한에서 죄인 취급 받고, 범죄인으로 취급 받은 이유에 뭐가 포함 되었냐하면 사실은 제가 러시아에서 (고려인) 여자랑 동거를 한 거예요.
첫 번째는 처음 상납하기로 했던 돈도 돈이지만, 제가 여자하고 동거한다는 얘기가 퍼지게 된 거죠, 사실 제가 (처음)인터뷰에서는 말씀을 안 드렸지만, 근데 이게(동거) 북한에서는 그만큼 큰 범죄에 해당되는거였거든요.
한국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도 없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남한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신 이유가 뭔지?
처음엔 사실 한국으로 가고 싶었었는데...(한참을 망설이더니)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게요 1999년에 제가 한국 대사관에 처음 찾아갔을 때, 그때가 김대중 정권하에 햇볕 정책이란게 있었거든요.
근데 한국 대사관에서 절더러 "절대 한국으로 (탈북)오지 마라" 그러더라구요, 대사관에서요.그것도 대한민국대사관에서...
남한으로의 탈북을 요청하셨는데, 한국 대사관에서 절대 한국으로 오지 말라고 그랬다고요?
네 네, 당시 상황에서는 이게 (탈북)신청을 하더라도 (한국 대사관에서 승인)안 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았거든요. 저는 그래서 그때 그냥 한국행을 포기했어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그럼 러시아에서 우즈벡으로 들어오셔서의 말씀이신건가요?
(네) 사실 그런 것도 있고 자세한거는 또 제가 나중에 애기할 수도 있지만(박씨는 한국 대사관 관련 자세한 얘기를 추후 따로 말하고 싶어해, 이번 기사에는 싣지 않습니다.)
(한국으로의 탈북신청) 이게 저는 안 되는 줄 알고 그냥 (한국 대시관에) 매달리지 않고 그냥 우즈베키스탄에서 조용히 숨어 살다가 여기(우즈베키스탄)에 유엔(UN)에서 고등판무관이 나왔어요. 난민지위를 결정하는 고등 판무관이죠, 사실 의외로 (북한 탈북)난민이 많아요, 그래서 여기에(유엔본부에서 나온 고등판무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1999년에 한국대사관에서 입국거부 되시고 2~3년후에야 한번 더 찾아가신 거군요. 그래서 유엔의 도움을 받으셔서 결국엔 난민지위를 인정 받으셨나요?
그당시에는 제가 북한에서 가지고 나왔던 노동 수첩이랑 여권 (유효기간 지난 여권)이랑 모든 것들이 다 있으니까 유엔에서는 북한의 독재상황을 인정을 하고 유엔 차원에서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라 제가 난민 지위를 인정 받고 이틀 만에 한국으로 갈수있었어요.
유엔에서 난민지위를 받기 6개월 전에 인터뷰를 해요. "이 사람을 난민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 인터뷰 하고 6개월 후에 난민 인정 서류가 나와요 제가 그렇게 딱 일 년 만에 난민 인정 서류까지 받게 된거예요
사실 처음에 한국은 제가 못 가는 줄 알고 서류 밑에 보면 지원국이 있어요. 어느 나라를 가고싶냐는 근데 저는 한국은 못 가는 줄 알고 아예 한국은 적지도 않았어요. 그냥 미국 하나 적어 놨어요 .그랬더니 심사관이 "왜 미국 하나만 적었냐?"고 의아해 하는거예요 그래서 "내가 사실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한국은 못 가는 걸로 알고 있다. " 그랬더니 "그럴 리가 있겠냐?" 그러더라고요 와 그때는 진짜 한국대사관이고 김대중이고 햇볕정책이고 뭐고간에 한국 자체가 다 싫은거예요 근데 유엔의 조력이 없으면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머릿속이 엄청 복잡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결론을 낸게 뮈냐면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거였어요. 한국은 생각도 안했어요
근데 유엔에서 그러더라고요 "어찌 됐든 지금 당장은 당신이 미국으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그 대신 당신이 원한다면 한국으로는 갈 수가 있다." 어쩌겠어요 미국을 당장 못간다는데...그렇게 한국으로 가게 된거예요
그 얘기를 해 주세요. 한국에 오셔서 이제 하나원 들어가셨잖아요.
국정원에서 1개월 조사를 받고 제가 여기(우즈베키스탄)서 고려인 아내하고 헤어져서 저혼자 2003년 2월 5일에 한국으로 나갔어요.
당시 아니에게는 "다시 오겠다. 아니 다시 오겠다는 것보다는 내가 죽지 않으면 너를 찾을게" 그렇게 집사람한테 미래를 약속을 못했어요.
그런데도 사모님이 기다리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함께 살게 된거죠
사모님께서 우즈베키스탄에서 기다린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저는 몇 년 동안 아내에게 전혀 연락을 못 할 줄 알았어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북한)사람들은 한국의 절차를 빠삭하게 알고 뭐든 준비를 다 해가지고 들어가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우주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들어가다 보니까 아예 모르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국정원 조사 끝나고 하나원 교육 끝나고 나니까 하나원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국제 전화를 전화 카드 하나 사가지고 그때 처음 전화를 한 거예요.
"미안하다. 나는 한국에서 이제 괜찮은데, 당신은 거기서 괜찮은건가?" 이런식으로 며칠에 한 번씩 국제전화를 했어요.
근데 2003년도까지만 해도 탈북자가 한국으로 들어가면 2년 동안 여권발급이 안되었어요. 근데 그게 나중에 특별법으로 바뀌어가지고 하나원 나오고 나서 1년짜리 단수 여권이든 5년짜리 복수 여권이든 다 나오게 됐거든요. 저는 그 과정을 겪었어요.
근데 우즈벡에 그때 당시 제가 여기(우즈베키스탄) 정착을 하면서 유엔 난민 지위가 결정되고 그때 집사람하고 같이 살던 아파트가 하나 있었어요. 처음에는 칠란자에서 월세 아파트로 살았고 거기서 살다가 조금씩 돈을 모아가지고 윤사바도에다가 아파트 한채를 샀어요. 방 하나 거실 하나 두 칸짜리죠 그래서 집사람이 거기(우즈베키스탄) 있는 상태에서 제가 한국으로 들어간 거죠. 여기저기 있는 돈을 다 털어 모으니까 오천불($5,000)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한국 들어갈 때 삼천불($3,000) 가지고 들어왔었거든요.
사실 아주 막막하니까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뭔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해서 제가 그 당시 집사람에게 "이제 우리가 지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미래에 인연이 될 수도 있고 하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삼천불($3,000)은 가져갈께 이천불($2,000)은 너한테 놔두고 또 아파트까지 하나 샀으니까 당분간은 큰 어려움은 없이 살수 있을거야" 이정도면 그래도 내가 없어도 집사람이 여기서 밥은 먹고 살 거다 아마 밥은 먹고 살 거다. 하면서 저 스스로를 안심 시켰어요.
그때도 집사람이 사범대학을 졸업해서 우즈벡 사람들에게 한국어 교육하고 과외하고 뭐 이런 걸 했어요 피아노 교육하고 이런 거 한 번 가면 한국 돈으로 하면 만원 정도 어떤때는 몇 천원 이렇게 받으면서 사는걸 보고 진짜 내가 이렇게 한국에 막연하게 들어왔는데 그 사람도 눈앞이 깜깜했죠. 저도 깜깜했고....
그런데 제가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면서 목소리를 들으니까 정말 반갑더라고요, 우리는 생사를 같이 했으니까, 그당시 내가 여권도 없을 때 나를 받아주고 나를 걷어준 고마운 사람인데....얼마나 미안하고 그리웠겠어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을 떠나시고 사모님과는 몇 년 만에 만나셨어요.
몇 년이 아니죠. 몇 개월 만에 만난건데 이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는 하나원에서 나오고 나서 2년이 지나야 여권이 나오는데 저는 7월달인가? 하나원에서 나온게 5월인가 6월에 나와 가지고 담당 형사한테 자꾸 여권 얘기를 하니까 "야! 너네 여권 신청해도 안 나와, 근데 혹시 모르니까 한번 여권 신청해봐" 형사가 딱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여권 신청을 대구시청에다. 했어요 그런데 5년짜리 여권이 떡하나 나와버리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즈 코리아 안가? 거기다가 여권을 보내서 우즈베키스탄 입국 비자 신청을 하니까, 이게 또 2주 만에 덜커덕 나와 버린 거예요. 그래서 우즈벡에 들어와서 여기에 조그마한 회사도 있었고 정리할 것도 있었고, 근데 다 정리하면서도 집(아파트)은 팔지 않고 그냥 이거는 놔두고 가자, 한국에 내가 집도 받았고 모든 게 다 있으니까 무조건 한국으로 같이 가자라고 말하면서 집사람을 데리고 우즈벡에서 한국으로 나간 거예요.
우즈벡 한국대사관에서는 제 사정을 아니까 집사람 결혼 비자를 발급 해줬거든요, 그래서 함께 한국으로 나가 가지고 혼인신고를 딱하니 했는데, 아뿔싸, 제가 북한에 있는 아내를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진술했었는데 북한에 있는 아내가 거기(가족관계 등록부) 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호적등본인가(가족관계 등록부) 거기 특이 사항에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삼팔(38)분계선 이북 지역에 '이XX 거주'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대한민국 법에 이중 혼인 신고라는건 없잖아요. 근데 대한민국 법이 얼마만큼 틈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보면 남북을 하나의 나라로 봐요, 그런가 하면 어떻게 봤을 때는 별개의 두개 나라로 봐요,
우즈벡 집사람 하고 약 5~6년을 만났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혼인신고 불가' 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 제게 일어난 거예요, 이렇게(중혼) 했을 때는 대한민국 헌법적으로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요.
그래서 사모님과의 혼인신고 불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한국에서는 합번적으로 혼인신고가 안 되다 보니까, 집사람이 (한국내 혼인신고 안되는 사정을) 봐주고 봐주고 해서 1년 동안 (한국에 체류 하는 것)고집을 부렸는데도 결국은 (혼인신고가) 안 되잖아요,
사실 그당시 집사람이 경북대 음대 시험까지 합격을 했어요.석사 과정 마칠려고 대구에 있었어요. 거기서 학교까지 다녔는데 대학에 입학하려면 집사람은 우즈벡에 가서 다시 유학 비자로 바꿔서 다시 한국으로 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죠
고심끝에 결국에는 집사람 혼자 우즈벡으로 돌아가고 저는 한국에서 혼자 지내기로 했는데 우즈벡으로 혼자 들어간 집사람이 임신을 해버렸어요. 한국에서 지내면서 임신을 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은 하기도 싫어요. 진짜.
한국에서 단 하루도 안 쉬었어요. 저는 (돈을 벌기 위한) 뭔가를 하기 위해서 막일부터 시직해서 심부름 회사에도 다니면서, 동네 옆 식당에 가서 삼겹살 한번 먹는 것도 진짜 한 달에 한두 번 큰마음을 먹어야 가서 삼겹살도 구워 먹고 그랬습니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 가장 힘들게 겪은게 너무 많았어요.
저는 타국에서 불법으로 먹고 사는 게 얼마만큼 힘든다는 것을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에서)이미 겪어본 놈이기 때문에 그때 저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한국에 사는게 저는 합법이지만 제 집사람은 불법체류인거예요. 그럼에도 한국에서 별다른 아무 문제 없이 집사람의 한국 체류를 묵인을 해주는데 저는 그냥 신경 안쓰고 살아볼까? 라는 생각을 해봤기 때문에 우즈벡에 들어가 있는 집사람에게 "그쪽 일 어느정도 끝내놓고 거기서 애 낳기 전에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라"고도 했었어요. 근데 임신 개월수가 많다보니까 한국 입국이 또 안되는 거예요. 임산부 비행기 탑승이 안 되는 거예요. 결국은 제가 한국서 혼자 지낸지 100일 지나서 (한국생활)다 포기하고 보따리 싸서 그냥 우즈벡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그게 몇 년도죠
그게 제가 한국에서 2004년도에 들어왔어요
그럼 우즈벡으로 다시 돌아오셔서 모든것을 새로 또 시작을 하신 거군요
처음에 들어와서 한 2년,3년은 정말 많이 힘들었죠, 그리고 자리잡기까지 거의 한 18년 정도는 기자님이 상상하시는것 이상으로 비참하고 힘들게 밑바닥부터 차근 차근 다시 시작해서 지금 가족들 밥 굶기지 않을 정도로 자리를 잡은거예요
대사관에서 한국행을 거절했고 한국에 거주 하시는 동안 그렇게 마음 고생을 하셨으니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좋지는 않으시겠군요?
전혀 안그렇습니다. 저는요 북에서 몸뚱아리 하나만 가지고 한국에 왔어요, 그런 저를 받아주고, 돈도 주고 음식도 주고 집도 주었어요, 세상 천지 어디에 그런게 있어요?, 없어요, 죽을때까지 저는 그 고마운 마음 잊을수 없어요, 그리고 한국에 살고 있는 일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낸다고 들었어요, 미군 철수니 한미연합훈련 반대니 국가 기강을 저해하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분들께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한국이 싫으면 당신들이 살던 북으로 다시 돌아가면 해결될 일 아니오? 왜 한국에서 김정은이 똘마니 같은 짓거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가는데 당신들이 간첩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우리를 받아주고 걷어준 한국을 반대합니까?" 진짜 마음 같아서는 쫒아 가서 한대 패주고 싶어요 진짜 그러면 안되는거 아녜요?
박 선생께서는 탈북 과정이나 한국 거주 기간이나 그렇게 마음 고생하고 힘들었는데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가득 하신것을 느꼈습니다.
끝으로 이왕이면 한국에서 잘 살아주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이곳 우즈베키스탄에서라도 가족들과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신것 같아 안도가 됩니다.
하시는 일 번창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대중 정권 당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왜 박 씨의 한국행을 거절했는지 궁금해졌다.
본지는 탈북민들의 증언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자세히 살펴보고 탈북과정에서 그들이 겪은 비 인권적인 대우들에 대해서도 향후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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