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코리아=도쿄) 김양현 특파원 = 2011년 3월 11일.. 아직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마다 그날이 되면 매스컴을 통해 피해지역의 아픔을 듣고 보게 된다. 천년에 한번 있을 법한 대형 쓰나미가 일본의 동북지방을 쓸어갔던 날이다.
女川(오나가와)는 JR 石巻線(이시노마키 센)의 종착역이자 어업이 활발하던 인구 약 1만 명의 아주 작은 항구마을이다.
센다이 역에서 차를 달려 약 1시간 남짓.. 당시의 피해지역 중에 가장 부흥이 빠르다는 오나가와(女川) 역에 도착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오나가와 역은 종이 건축가로 잘 알려진 반 시게루의 작품이다.
오나가와 역은 이렇게 새로운 마을로 거듭나기까지 수 많은 스토리가 생겨났다.
지진이 일어나고 30분 후... 밀려들어오는 쓰나미를 피해 높은 곳으로 대피,
목숨을 건진 80%의 주민들 중에는 각자의 판단으로 '이곳은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곳'이라고 다른 도시로 이주를 한 주민이 약 30%가량으로 사망자와 행방불명을 포함하면 현제 6천여 명이 남아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수많은 피해지역들 중에 7년 만에 이런 아름다운 재건에 성공한 것은 고향에 남은 이들의 오나가와를 사랑하는 마음임에 틀림없다.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마을'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에게 중학생 자녀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라고 의미를 부여했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열심히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야말로 내가 할 일이라고 말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100년 이상 활기를 이어갈 마을을 다시 만드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라고 했다. 쓰나미로 초토화된 마을의 심벌로 오나가와 역 공사 초기의 모습이 남아있다.
더 높은 방파제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자연에게 인공적으로 대항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는 주민들..
그들이 살던 그 자리에 그대로 상업시설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고, 거주 지역으로는 산을 깎고 평지를 만들었으며.. 쓰나미로 생긴 잔해들로 지반을 7M 더 높이 올려 오나가와 역 자체는 2015년에 완공되었다.
개찰구 1층, 그리고 2층에는 누구나 피로를 풀고 갈 수 있는 유폿포라는 온천도 문을 열었다.
쓰나미 전에 있던 원천수가 피해를 입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들 했다.
온천의 지배인 요시다는 아무것도 없던 이 곳에 첫 상업시설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대피소 생활을 하던 주민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쓰나미가 있고 3일 뒤.. 3월 14일의 대피소에 걸린 신문에 가슴이 뭉클해지기 시작했다.
지진이 오고 30분 후 모든 것을 쓸어간 쓰나미..
당시 사이타마현에 있던 기자로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백지화 되었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인터넷과 TV로 정보를 얻던 그 시간에 그들은 대피소에서 아무런 정보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당시 오나가와의 신문사도 쓰나미로 쓸려갔고 그곳의 기자가 가족의 안부도 모른 채, 정보를 수집하여 손으로 쓴 신문을 피난소에 붙여 정보를 공유했던 일은 세계적으로 감동을 얻고 미국 워싱턴에 있는 보도 뮤지엄에 영구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2층으로 오르면서 이 종이로 만들어진 오나가와 역의 설계가 눈에 들어온다.
갈매기의 날갯짓을 상징하는 지붕의 곡선이 안에서도 느껴지고 내부의 그림들은 일본 화가 센주 히로시의 작품이었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림에는 수많은 꽃들이 새겨져있다. 센주 히로시가 그린 나뭇가지에 마을 사람들이 그린 꽃과, 전국에서 응원으로 그려보내준 사람들의 꽃이 피어 부흥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오나가와의 온천 유폿포의 물은 피부에 남은 여분의 각질을 제거한다는 저장성 알칼리성 온천수로 일명 '미인의 물'로 불린다.
이런 작품들과 수많은 마음들을 느끼며 오나가와의 캐릭터 시파루짱을 만났다. 일본어로는 우미 네코로 불리는 갈매기가 꽁치를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시파루 라무네.. 그리고 출출한 배를 채워준 건 오나가와의 특산물 중에 하나인 멍게 음식들이다. 멍게 안에 삶은 달걀을 넣어 멍게 계란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멍게 먹는 방법이 새로워 보인다.
온천과 역 다음으로 재건 된 곳이 SEAPAL PIER 女川(시파루 피아 오나가와)와 하마 테라스.
각지에서 도착한 지원받는 물품도 감사하고 좋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손수 만들고 서로에게 팔며 쓰나미에 쓸려간 마을을 비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시 새로 만들 수 있는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다.
가설 점포로 시작되었던 역 주변의 상점들은 바다가 보이는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피해지역 중에서는 가장 빠른 속도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마을 산책을 나섰다.
그곳에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실물 크기의 람보르기니... 아니 담보루기니가 있었다. 일본어로 ダンボル(담보루)라고 불리는 골판지 택배 상자 회사의 사장님과 '담보루기니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피난소에서 생각보다 튼튼한 골판지 상자로 화장실이며 의자.. 침대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담보루가 가진 무한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장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남자라면 한 번쯤은 마이 카로 꿈꾸는 슈퍼카가 담보루로 제작되어있고 이 매장의 구석구석에는 골판지 상자로 만들어진 진열장과 DIY가 판매되고 있었다.
직접 만들어 이 마을의 활기를 되찾는 노력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각종 체험공간이 많아 둘러 볼 곳이 많은 오나가와쵸..
후쿠오카에서 온 KURIYA 비누 공방은 이곳 오나가와산 천연 재료들로 비누를 만들어 판매와 체험뿐 아니고, 주변 숙박시설의 객실에도 제공되고 있었다.
매장의 문을 열자 향기로운 비누들이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 비누를 만드는 체험을 신청하면 1시간 정도에 나만의 비누를 만들 수 있었다.
계량을 하고 열심히 섞어 걸쭉해진 비누를 종이상자에 넣어 그날 바로 가지고 가는 향기로운 체험. 하루 이틀 지나고 내 취향에 맞게 잘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1개월간 숙성하면 오나가와 미역 비누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시파루피아와 하마 테라스를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하나 둘 조명이 들어온다. 촉촉하게 내린 비로 사람들의 이름이나 메시지가 적힌 보도블록에 빛이 묻어나는 오나가와쵸.
이 마을에서 가장 야경이 예쁘게 다가온 곳이 숙박시설 에루파로(エル ファロ)였다. 오나가와 역 3층에서 내려다 본 에루파로는 색색의 파스텔톤 컨테이너 박스형 호텔이다.
쓰나미가 쓸고 간 이후, 활기도 색도 없던 마을..
흑백이던 마을에 컬러를 입혀 활기차게 만드는 것에 공헌한 최고의 시설이 아닐까?!
오나가와에 자원봉사자들과 마을 사람들의 친척들.. 그리고 앞으로 부흥을 위해 찾아오는 인부들이 묵을 곳이 없다면 부흥도 없다고 판단한 오나가와의 숙박업자들은 이미 떠내려간 호텔이나 료칸 대신 새로운 숙박시설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오나가와 마을은 아직 건물을 만들기에는 위험 지역으로 구분되어있었다.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이 지역에서 건물이 아니면 어떤 걸 만들어야 하나...?
결국 오나가와 숙박업체 4곳이 힘을 합쳐 컨테이너 숙박시설을 만들었다. 그들의 생각에 찬동한 사람들의 수많은 의견을 수렴하여 도달한 결론이 컨테이너 하우스.
건물을 짓기에는 위험 구역인 만큼 어떤 위험이 닥치면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컨테이너 라면 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정말 경이로운 아트다.
스페인어로 エル ファロ는 등대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정말 이 마을을 등대처럼 환하게 비추고 있다.
바퀴가 달린 채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3~4명이 묵을 수 있는 복층 방을 만들었다.
테이블 위에는 1회용 비누 대신 오나가와에서 만든 KURIYA 비누공방의 비누가 놓여 있었다.
오나가와에서 만든 언제든 이동이 가능한 숙박시설의 완성. 이들의 아이디어와 직접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가는 모습에 감동하며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어느새 야경으로 다가오는 시파루피아의 모습.
이런 곳에 저녁에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하마 테라스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낮에 봐 두었던 이곳 오나가와만의 맥주를 맛 볼수있는 ガル屋(가루야)를 찾아갔다.
거기에는 젊은 아가씨 두 명이 즐거운 웃음 소리를 내며 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반갑게 나를 반겨주었다. 후루~티한 향에 진한 맥주와 함께 저녁에는 인적이 드물 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시원~하게 내려가 버린다.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온 그녀들..
'한국 좋아해서 서울에 여러 번 놀러 갔었다'라며 말을 걸어온다. 센다이 출신의 그녀는 이곳 오나가와가 좋아서 쓰나미 이후 이주해 살며 보육원 선생님을 하는 분이었다.
오나가와의 눈부신 부흥에 감탄했던 낮과 그곳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밝고 따뜻함이 잊지 못할 밤을 나에게 선물해 준 시간들이었다.
"오나가와는 어디서 왔던 무엇을 하다 온 누구든 간에 이렇게 친근하게 맞이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센다이에서 이쪽으로 이주해 왔다" 는 보육원 젊은 여선생님과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밤새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역사?! 정치?! 한일관계?! 그런 건 몰라~" 라는 말로 건배를 청하던 사람들.
그냥 사람이 좋은 이들과의 인연이 아마도 나를 다시 이곳으로 부를 것 같다.
그렇게 한밤이 지났다. 아침 공기는 하늘만큼 신선했다.
오나가와 역 3층 전망 층에서 바다가 보이는 아침. 1년 중 새해 첫날에는 이 시파루피아 한가운데 가로수길에 오르는 일출이 최고라고 했다.아침 출근시간에 열차를 타고 내리는 활기찬 모습이 기분 좋은 아침을 열게 해 주었다.
아침 일찍 들어오는 고깃배들도 속속 항구에 도착한다. 어민들의 아침에 이곳의 캐릭터인 갈매기들도 분주한 모습이다.
아직 공사 중인 이 항구 근방에도 새로운 상업시설이 더 지어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다시 새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다시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 다시 밀려올지 모르는 쓰나미가 또 온다면 모두 목숨을 위해 이 재건 된 상업지구를 버릴 것" 이라고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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